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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많이 모여주셔서 감사 드리고요. 제가 뭐 강의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여기 다 영화나 드라마 작가 지망하시거나 그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죠? 대부분? 그래서 그냥 제가 이 일을 먼저 하고 있는, 그냥 그런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써 제가 해왔던 일들에 대한 소개? 그렇게 생각하시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단히 좋은 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지난, 작년에 제가 이 온라인 강의를 한 번 준비 했었었는데, 그때는 이야기를 구성해 가는 방향에 대해서 애기를 했는데 오늘은 아이디어에 대해서, 여러분 제일 힘든 게 아이디어 아니에요? ‘내가 뭘 쓸까?’ 그걸 찾아내고, 근데 나 이런 거 써야지 했는데 그걸로 또 계속 찾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계속 이렇게 발전 시키고, 발전 시키고 해야 하니까 소재를 찾은 다음에, 그걸 계속 발전 시켜 나가는 게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아이디어에 대해서 오늘 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의 시작, 검증, 그 아이디어를 향한 집중, 그래서 비로소 아이디어 여기까지 쭉 한 번 얘기해볼게요. 제가 얼마 전에 중앙일보 기사를 봤는데 그 기사에서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나눴었는데,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 사람 파악, 협상, 설득, 창의력, 이해하기 이런 단어들이었어요. 그 안에 있는 공통적인 게 뭘까? 저는 정의하기를, 거기에는 이제 온도라는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번 강의 준비하면서 조사, 찾아봤더니 요즘에 사랑에도 온도가 있고, 음식에도 온도가 있고, 그래서 찌개가 95도가 제일 맛있는지 이제 알게 되었고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아이디어에도 온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어떤 거를 써야지 그런 거를 생각할 때, 도대체 어느 부분에 온도계를 꽂아서 가장 효과적인 온도로 내놓아야 이게 제작사나 투자사나 배우들의 마음을 노크할 수 있을까? 그 온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집필한 작품들을 가지고, 제가 찾아갔던 온도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하고 넘어갈게요. 작년에 개봉한 ‘형’인데요. 여러분들은 소재 어느 것 쓸까 생각하실 때 보통 뭐하세요? 저는 라디오 많이 들어요.계속 라디오를 드는데, 그 형 이야기가 작년에도 말씀 드렸지만 라디오에서 들었던 거거든요. 그래서 그 라디오에서 이제 어떤 전화 연결하는 라디오였는데, 거기서 되게 국가대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 학생이 해맑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장애인 국가대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가 그 얘기를 듣고서는 충격이었죠. 도대체 얼마나 좋은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라면 저렇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갑자기 시력을 잃은 아들을 혹은 동생을 그렇게 해맑게 할 수 있다는 거는 사랑이 넘치는, 파이팅이 넘치는 가족이잖아요? 근데 그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영화의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면 아이러니가 생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반대로 형 같은 경우는 그 아이러니에 온도계를 꽂은 거죠. 아주 사랑스럽고 파이팅 넘치고 이 아이를 정말 잘 케어 하는 그런 가족이 아니라, 세상에 저렇게 사기꾼일 수 없는 진짜 남이었으면 좋겠을, 그런 형을 갖다가 데려다 놓고 그 두 형제에 아이러니에다가 온도의 공감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으로 형을 집필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이제 파파로티도 저거는 티비 보다가 되게 많이 보죠? 제가 좀. 제가 티비 보다가 스타킹 보다가 다들 아시죠? 저게 누구 얘긴지. 그때 저 이제훈씨가 역할한 김호중씨라는 친구가 스타킹에 나와서 성악을 했거든요? 그 노래를 불렀는데, 진짜 잘 불렀어요. 엄청 잘 불러서 쟤 조폭이라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부르냐 하고 모두 이제 그 친구에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했거든요. 방송에 컨셉도 그랬고 근데, 그 잠깐 잡힌 선생님의 얼굴이 있었는데 제가 봤을 땐 한 5초 정도 안 잡혔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선생님 얼굴에 사연이 많아 보였어요. 제가 볼 때는. 그래서, 저 얘기를 한 번 가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고 나서 그 선생님을 찾아 다녔죠, 거기가 김천예고라서 김천까지 쫓아 다녔어요. 계속 왔다 갔다. 또 선생님 서울에 오시는, 꾸준히 공연 때문에 오는 날이면 거기 가서 또 기다리고 식사하고, 한 번 선생님 댁 앞에 가가지고 이제 또 여쭤보고. 근데 사람들은 아마 저 김호중이라는 이제훈이 역할한 거기 조폭, 되게 컨셉이 좋잖아요? 제 조폭이다? 근데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어, 근데 지가 보석인지 모르고 저렇게 살아, 그런 애가 진정한 성악가 돼. 재미있지?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글을 어떻게 집중, 어느 방향으로 정하고 갈 것인가는 누가 정하냐면은 여러분이 정하실텐데 그거 처음에 정하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잘못 정하잖아요? 끝까지 갔다가 다시 와서 다시 써야 하잖아요. 그거 진짜 짜증나고, 정말 집어 던지고 싶지 않나요? 그래서 처음 잘 정해야 되는데, 그 잘 정한다는 기준은 누가 또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순 없죠. 나의 기준이죠.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 내가 거기에 동감할 수 있는 것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제가 선택한 것은 김호중 학생이 아니라 서수용 선생님이었어요. 잠깐 5초 비친 서수용 선생님. 저 서수용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길래 저 조폭을 데리고 성악가를 만들었을까? 나중에 취지 때 이 부분에 가서 말씀 드리겠지만 그렇게 선생님을 찾아 뵙고, 조르는 동안 정말 선생님이 인생이 저 학생보다 더 파란만장하구나, 엄청 나구나 라는 얘기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는데 여튼, 제가 파파로티에 꽂았던 부분은, 온도계를 꽂았던 부분은 선생님이었어요. 그래서 파파로티는 그렇게 집필을 시작해 나갔고..여러분도 전공이 다 다르시죠? 이제 대학을 가셨으면 안 가셨을 수도 있고 근데, 저는 전공이 뭐게요? 심심한데 퀴즈 낼까요? 내가 그때 강의할 때 말씀 드렸나? 제 전공을? 저 중국어과 거든요. 그래가지고 열심히 다니다가 중국에 연수를 간 97년 이였는데 그 때 중국 이렇게 활발하게 왔다갔다하고 그러진 않았고, 그때 갔을 때 저희 층에 북한 아저씨가 살고 있었어요, 같이 왔어요. 북한 팀도. 되게 살벌하죠? 처음엔 되게 무서웠는데 밥을 사 먹을 데가 많이 없어가지고 거의 집에서 그 숙소에서, 탕비실에서 밥을 해먹었단 말이에요? 근데 그 아저씨들도 밥을 해 먹는 거에요. 그 탕비실에서 만나는 거에요 자꾸. 그러면서 어느 날 아저씨가 뭘 빌려달라 그러셨어요, 고춧가루 빌려달라 그랬나? 뭐 빌려달라 그래가지고 서로 조금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좀 친해졌죠? 그러고 되게 친하게 지냈는데 거기서 이제 제가 연수 기간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이랑은 여러분들도 어떻게 인사하세요? 일반적이잖아요? 야 이메일 주소 줘. 그때 이제 이메일이 활성화 되지 않았으니까. 야 주소 줘, 야 너네 집 전화번호 뭐야? 그때 핸드폰도 없으니까 그냥 집 번호, 집 주소 그래서 실제로 한국에 와서도 편지도 오고 전화도 오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아저씨랑 탕비실에서 또 만난 거죠, 그 DMZ에서. 쭈뼛쭈뼛 하는데 제가 저 내일 간다고 그랬더니 아저씨가,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에요. 친하긴 친한데. 그게 거기서 제가 아저씨 주소 주세요, 제가 편지 쓸게요. 그럼 어떻게 돼요? 저는 한국 오기가 힘들었겠죠? 한국 어딘가로 가서 혼나지 않을까요? 그쵸? 많은 질문을 받을 거 아니에요? 그러고 아저씨도 뭐 야 북한 한 번 놀러 와 이러면 큰일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 그냥 막 서로 눈빛이나 말은 100마디를 하고 싶었는데 뭐 딱히 할게 없었어요 말을. 그래서 그냥 아저씨는 ‘엄마 봐서 좋겠구나’ 그랬고, 기억에. 저는 뭐 ‘건강하세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쭈뼛쭈뼛 헤어졌는데 그거는 아주 오래 전 기억이잖아요? 벌써 20년 전이네요? 올해가 17년이니까. 근데 그 후로부터 한참 후에 아 제가 시나리오 일을 막 시작해서 좀 하고 있을 때 코리아 작품이 들어왔어요. 같이 일하자고 근데 코리아 다 무슨 내용인지 보시면 아시죠? 보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여튼 그게 현정화 선수랑 리분희 선수랑 그 남북한 함께 하나의 팀으로 같이 탁구를 쳤던 얘기잖아요? 그때 제가 그 옛날 중국에서 겪었던 그 감정 있잖아요? 그 감정의 기억? 그걸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던 작품인 거죠. 그때 한 십 몇 년 전에 느꼈던 감정이고, 그때에 뜨거운 온도였지만, 지금 와서 작가로써 코리아라는 작품을 쓰게 될 때, 그 때 느꼈던 그 부분을 상기하게 된 거죠. 제가 지난 작년 강의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키신을 두고 달려가면 좋을 거라고 말씀 드렸었는데, 제가 여기 코리아에서 생각했던 키신이 바로 그 아저씨랑 이별 했던 장면을 저렇게 저 장면이었어요. 버스에서. 전 그 때 하지원씨가 아 나 뭐라고 인사 해야 되냐, 뭐 전화할게 편지할게 도 못 하고 내가 뭐라고 인사해야 되냐고 했을 때 배두나 씨가 별 말을 못 하고 건강 하라고 대사를 이제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다행히 제가 저 부분에 그 온도계를 꽂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저 부분을 키 씬으로 잡는 게 맞지 않을까 했을 때 같이 일하시는 제작하시는 분들도 동의해 주셨고 그 관객 분들도 그 부분에서 많이 동감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중국 연수 중에 어느 날로 지나갈 수 있는 에피소드였지만 저한테는 그게 오래오래 남아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분단의 아픔은 대한민국에서 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여러분들이 함께 보시면 그 공감에 온도에 공감해 주실 거라고 기대했는데 어느 정도 많이 호응이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7번 방의 선물 같은 경우는 부성애의 크기에 대해서 온도계를 꽂았어요. 그때도 키신을 어디다 둬야 되나 굉장히 고민하고, 고민 했는데, 그때 제가 여기서 온도 이 공감으로 잡았던 부분을 부성애의 크기였어요. 여기 나오는 류승룡씨가 역할이 바빠가 예승이 아빠가 바보잖아요? 지체장애인이잖아요? 그러면 지체장애인의 부성애는 일반인 보다 모자랄 것 인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어쩌면 더 일반인들 보다 더 큰 부성애를 가지고, 순수한 사람들이니까,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을 했고거기서 이어진 게 그 7번방의 선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헤어지는 티자 복도 씬이 있어요. 저는 그래도 아무리 바보라도, 아무리 의연하려고 딸을 위해서 의연하려고 해도 저 딸을 두고 내가 지금 이제 곧 이 세상을 떠나야 된다면 본성이 발휘되지 않을 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다시 달려왔고, 거기서 이제 처음으로 싹싹 빌죠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그러고 살려달라 그러고 뭐든지 하겠다 그러고 막 머리는 땅에다 막 박잖아요. 막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열연도 한 70% 인 것 같고, 연출도 굉장히 좋았고 하여튼 거기에 있던 감정이 우리나라 엄마, 아빠들의 자식을 향한 또 우리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들 그런 게 절대적이라는 게 그 씬의 온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7번방의 선물은 그 부분에다 제가 바보 아빠의 더 큰 부성애에다가 이렇게 온도계를 꽂았었는데 그러면 제 얘기를 듣고 있으면 여러분 눈과 귀를 열어두고 라디오도 열심히 듣고, 티비도 열심히 보고 예능도 보고 다큐도 보고, 그리고 이렇게 잘 사람들을 눈과 귀를 열고 돌아다녀보고 많이 들어주고 이러면은 다 갑자기 핑 하고 이걸 쓰렴 하고 나오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근데 왜 이런 제가 라디오를 듣다가 왜 저 국가대표 얘기가 세상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텐데 거기서 저게 꽂혔을까? 그리고 스타킹을 그렇게 많이 봤는데 왜 기구한 사람들도 많고, 희한한 사람들도 많은 왜 저기에 꽂혔을까? 제가 형제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형제 얘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 사연들 중에서 그 국가대표 시력을 잃은 그 학생 이야기가 제 가슴속에 상당히 깊이 남아있었겠죠. 그리고 성악에 대한 얘기가 제가 꼭 하고 싶었어요. 클래식에 그렇게 되게 관심이 막 많고 아는 것도 많고 그렇지 않아요 근데 어쩔 때 성악을 들으면 마음이 되게 뜨거워 질 때가 있어요 쓸데없이. 그래가지고 성악이나 뮤지컬에 대해서 한 번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스타킹을 보면서 저 친구 얘기를 가지고 성악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렇게 하나씩 픽업이 되는 거죠. (…...) 저는 여러분들이 감정의 경험을 소중하게 담고 사셨으면 좋겠는데, 이게 그 ‘십이야’ 읽어 보셨어요? 5대 희극 중 하나인데 저도 잘 몰랐었어요. 언젠가 그 비행기에서 다큐를 봤는데 셰익스피어 다큐였어요. 보다가 거기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십이야’ 얘기를 하면서 이 셰익스피어가 자녀가 있는데 그 중에 쌍둥이가 있었어요. 근데 그 아들이 먼저 죽었어요. 그 때, 전염병이 돌 때 그때, 아들을 잃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큐에서 이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사람이 아마 ‘십이야’도 잃어버린 쌍둥이 아들에 대한 작가의 어떤 그런 마음이 항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쌍둥이 설정을 가져간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그거는 너만의 이야기 아니야? 네가 느낀 거 아니야? 라고 이렇게 공격할 때, 그렇게 물어볼 때도 있지만 그런 것 속에서도 이 대가도 자기가 겪었던 그 감정에 경험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데, 항상 그걸 가지고 있었잖아요? 자기 마음 속에, 자기 쌍둥이 아들을 잃었을 때 그걸 슬픔으로 이제 표현하지 않고 희극으로 표현한 게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대가들도 자기의 경험, 감정의 경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으면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우리들도 이렇게 온도와 공감에 대해서 말씀 드렸는데, 다시 또 한 번 정리를 하면, 우리가 겪었던 감정들, 그런 경험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KEEP(킵)해두면 언젠간 꺼내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그 두 번째로는이제 아이디어의 또 다른 시작, 다른 시선인데 여러분 남한산성 다 보셨어요? 아 저 못 봤어요 아직. 책만 읽고. 저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 인조에 대해서 제가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거든요? 이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을 그래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가 이고 작가님이니까 신간이니까 이제 샀는데 나중에 봤어요. 나중에 사놓고 봤는데 왜 김훈 작가님이 굳이 인조의 이야기를 할까? 그래서 좀 negative(네거티브)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내려 갔는데 거기 영화에도 그 장면 나오나요? 김상원이 강을 건너잖아요? 거기서 뱃사공이 길잡이 해주잖아요? 그 장면 나와요? 그렇구나 되게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 좀 굳이 인조? 그러고 읽다가 그 뱃사공이 길을 인도해주면서 김상헌이 같이 가자 그러잖아요? 남한산성 안으로 딸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고 하는데 왜 추운데 이러고 있냐고 그러니까 내일 청군이 오면 이렇게 길잡이 해주고 곡식이나 좀 얻으려고 한다고, 환장할 노릇이잖아요? 임금한테 데려다 주는 거지 임금의 목을 노리고. 치러 오겠다는 그 사람들에게. 근데 거기서 제가 이 배고픈 뱃사공, 이 배고픈 사공의 딸, 이 굶주림이 임금보다는 덜 중요해 라고 누가 말할 수 있냐는 거죠? 그렇게 접근한 다른 시선이 거기서부터 어 이거는 좀 끝까지 읽을 힘을 여기서 내주는 구나 생각을 했고, 끝까지 읽을 수 있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해서 단숨에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나중에 보시면 영화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조가 굉장히 막 김훈 작가님이 힘이 넘치시잖아요? 인조가 그런 대사를 탁탁 치니까 아 이 임금이 그럼 힘들어, 지금 대통령들도 그렇겠지만, 그 임금이 이런 게 이런 아이러니 들이 제 안에서 막 오는 거에요. 그래서 김훈 작가님이 인조 이야기를 이런 시선으로 다 일반적인 자연적이지 않은 다른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쓰셨구나 라고 생각을 해서 했었는데, 영화로 나와서 엄청 반가웠거든요. 자, 아이디어의 시작을 잠깐 정리해보면, 저는 어떤 아이디어에든지 당신은 휴먼 드라마 작가니까 온도 얘기를 하시겠죠? 아니죠, 스릴러도 굉장히 서늘해야 하잖아요? 그 모든 작품마다 저는 그 작품에 알맞은 아이디어에 온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 온도는 그 공감이 아닌가? 그렇게 한 번 정리를 해보고요.
그럼 내가 그렇게 아이디어를 여러분들이 생각해냈잖아요? 그럼 그걸 바로 쓰면은 제작사들이 사가나요? 그게 제작될까요? 그럼 저도 29살에 데뷔했죠 그게 정말 쉽지가 않거든요. 그러면 내가 다 꺼낸 아이디어에 대해서 검증해야 하는데요. 첫 번째로 상업적인 것은 저렴한 접근인가? 이렇게 정리를 했는데 이건 여러분 상업 영화 그러잖아요? 너무 상업적이지 않아? 이거 말이 약간 반감이 있지 않아요? 상업적 그러면 되게 돈만 밝히는 것 같고 막 작품에 가치와 예술과 이런 거는 상관 없는 것 같고 나는 돈만 벌면 되는 대기업에서만 나오는 말 같고 근데 그 상업적이라는 말이 저렴한 접근이라는 거에요. 누가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우리들은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에 이제 웨딩드레스가 저희 첫 각본이었어요. 그래가지고 제가 있잖아요, 강의 준비하기 전에 웨딩드레스 한 번 검색해봤거든요? 저것 평점 몇 점인지 아세요? 9점 몇이에요 여전히. 한참 옛날에 썼던 건데, 그러면 이렇게 좋은 영화가 왜 망했을까요? 정말 그때 잘 안됐거든요. 저 얘기는 제 개인적인 얘기를 제가 한숨에 썼던 것 같아요. 그 때가 시나리오 교육 받으러 다녔을 때에요. 그때 제가 이 작가가 되고 싶어서 미치고 환장하겠는데 아무도 나를 작가 안 시켜줘서 정말 빨간펜 선생님하고 다닐 때였는데, 그래도 밤마다 열심히 썼거든요. 근데 자고 있는 제 딸을 보니까 그 때는 그 딸이랑 둘이 살았어요. 지금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내 아기를 낳고, 4명이서 살고 있는데 그때는 딸이랑 둘이 살고 있었어요. 정말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있었는데 내가 글 쓴다고 이렇게 막 집중하고 막 스트레스 받고 이러다가 어느 날 뒷목 잡고 쓰러지면 내 딸을 어떻게 되지? 그 생각에 꽂혔어요. 근데 여러분 진짜 눈물이 났어요. 그 밤에 혼자 심각해서. 진짜 지금 내가 당장 없어지는 것처럼 근데 저희 딸이 여기 나오는 향기처럼 캐릭터가 진짜 착하고, 어른스럽고, 저를 케어하는 딸이었거든요. 그래가지고 아 이거 쓸까 했는데 정말 네거티브가 한 번에 쫙 생각이 나면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그걸 막 썼는데 3일만에 썼어요. 아까 연상호 감독님이 일주일 만에 썼다 그래서 놀라긴 했는데 제가 저거 3박4일 만에 썼거든요? 근데 왜 망했냐는 거에요. 그렇게 단숨에 썼고, 내 진정성을 그렇게 넣었는데, 상업적이 접근인가에 대한 검증을 제가 하지 않았던 거죠. 관객들이 보고서는 보면 재미있고, 뭐 감동적인데 이게 내 돈 그 때 8000원을 내고서는 볼 만큼 상업적일까? 재미있을까? 거기에서 제가 검증이 약했던 거죠. 그러니까 자본을 그렇게 들여서 배우들이 열연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나았어요. 근데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분명히 검증 하셔야 해요. 상업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다양성 영화를 하시는 분들은 그 만큼 다양한 여기에 남들이 느끼는 남들의 다양한 시선이 있는가 그 목적에 맞게 컨텐츠를 스스로 검증을 하셔야 해요. 두 번째 실용적인가 인데요. 그러면 상업적인 거랑 실용적인 거랑 같은 거 아니냐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유관순 열사 일기를 너무 쓰고 싶어요. 여전히 아직도 쓰고 싶은데, 아직 트리트먼트를 한 서른 몇 장을 써놨거든요? 근데 이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유관순 열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1919년 3.1운동 이야기를 쓰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그 여러분 1920년에 1주년에 만세 운동을 아세요? 거의 모르시죠? 제가 유관순 열사에 꽂혀서 어디지? 천안에 백석대학교부터 해서 다 취재하고 돌아다니고 엄청 했는데, 책도 다 갖다 보고 논문 읽고 정말 팠어요 샅샅이 거기서 제가 또 온도계 꽂은 게 있어요. 그게 정말 되게 정말 좋은 장면이에요. 여러분 1주년 후에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 계셨잖아요? 그 해 10월에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 3월달에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거란 말이죠. 몸이. 그렇게 버티고 계셨는데 3월 1일이 되기 전에 또 끌려가서 맞고, 그게 일이신데 그만 해야 하는데 조용히 또 그 감옥 안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하셨어요. 우리가 1주년에 만세를 불러야 한다. 그렇게 쪽지를 보내고 그렇게 막 해서 정말 서대문 형무소에서 3월 1일날 선창을 하신 거에요. 대한독립만세를 그니까 다들 너무 고문을 받으니까 숨어 있던 사람들도 그 어린 여자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만세를 시작하니까 다들 또 그 뜨거움에 그 감옥 형무소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네요? 근데 그 소리가 기록을 보면 담장을 넘어와서 서대문 형무소 밖에 길에 인력거 그때 뭐 전동차라고 그러나요? 그 모든 것들이 섰대요. 왜냐면 우리나라가 그때 국민들이 보따리, 애 다 내려놓고 같이 만세를 부른 바람에 거기에 트래픽 잼이 생긴 거죠. 이동도 안하고. 그저 만세를. 근데 저 1920년에 3.1절에 1주년에 꼭 쓰고 싶었단 말이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자 원톱은 힘들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가지고 의친왕 데려오고 하란사 선생님 데려오고, 얘기를 열심히 만들었어요. 그냥 보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투자사 분들도 상업적인 접근이 가능한 얘기라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근데 왜 아무도 합시다. 라고 말 못하느냐 하면 실용적인가? 에 다 걸리는 거에요. 저 스스로도 여러분 그거 만세 일단 이 얘기 하려면 1919년 3.1운동 만세 불러야 하죠? 그리고 아우네 장터도 한 번 가야하고 그리고 그 전 학생 운동이 한 번 있었고, 그런 거 다 킵 한다고 하고 시대배경, 다 세트 지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서대문 형무소 그 세트 다시 지어서 밖에서 그 1주년 만세를 하려면 적어도 100억이 든단 말이죠? 그 100억이 든다고 했을 때, 그 비피 넘길 수 있냐고 해서 실용적인가에 대해서 자본이 들어가는 쪽에서는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저도 생각해야 돼요. 이거는 나라에서 만드는 홍보영화가 아니잖아요? 어디 그냥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들을 해서 만드는 그런 게 여튼, 자본주의에서 만드는 상업성을 가져야 하는 영화로 나가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책임지나요? 이게 얼마나 큰 돈인데 그죠? 그래서 아직 홀딩하고 있는데 아이디어에 검증에서 상업성, 그리고 그 다음에 꼭 중요한 실용적인가 이 것도 검증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분들 지금 제가 신인 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계속 헤매고, 그런 부분이 있는데 저 제목을 보시면 좋은 아이디어도 어울리게 꿰어야 보배라고 제가 써놨는데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꽂히는 자기만의 씬이 있잖아요? 뭔가 쓸 때, 그거를 제가 버리기가 싫은 거에요. 어떤 대사, 얘랑 얘랑 그 대사를 치려면은 등산을 가야 해요. 그러면은 지금 도시에 살고, 등산이라곤 할 수 없는 캐릭터,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닌데 내가 생각한 저 산을 보면서 쳐야 하는 이 대사를 꼭 하고 싶으니까 얘네들은 산으로 데려가야 하네? 그럼 갑자기 산으로 데려가요? 안되죠? 초반부터 밑밥을 깔아야 하잖아요? 등산을 가게. 그러면은 시나리오가 얼마나 돌아가냐는 얘기에요. 이게 등산가는 얘기가 메인이 아닌데, 나는 그 씬이 쓰고 싶어서 그러면 거기에 얼마나 많은 씬 들이 낭비되고 있냐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이 정상에 가서 이 대사를 치리라 그것만 하나 버리면은 이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깔끔한 구성이 되는데 나는 그게 너무 내 스스로 기특해서 버리기 싫으니까 굳이 그렇게 끼워 넣는 거에요. 버리고 나면 더 심플하고 콤팩트한 시나리오가 되는 거에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씬 들을 살리기 위해서 주변 씬 들을 조율해 가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은 그거는 시나리오에 오히려 더 큰, 어리석은 손실을 가지고 온다는 거죠. 그니까 나에게 소중한 거지만, 영화는 여러분 나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다른 글쓰기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이나 시는 제가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라마보다도 영화가 더 협업이 필요한 거거든요? 그러면 영화를 쓰는 작가는 더 협업에 관대해야 해요. 더 눈과 귀를 더 많이 열어야 되고, 공감대를 더 열어야 돼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내 것을 고집하고,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면 언성만 높아지고, 그때도 한 번 말씀 드렸지만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다른 작가가 그걸 다시 쓰고 있죠. 나는 빠이빠이 하고. 그래서 영화는 협업이기 때문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검증해보셔야 하고 버려야 한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되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그렇게 전문가들이 조언을 해주잖아요? 그게 돈 받고 하면은, 일을 하게 되면은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해주는 얘기들이겠죠? 그거에 대해서 여러분, 정말 들을 때 짜증나고 힘들고, 왜 다시 써야 되는가? 모든 지적은요, 다시 쓰라는 거에요. 이거 너무 좀 그런 거 같아요. 이거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근데 그냥 두세요. 이러는 데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니까 맞지 않으니까 다 바꾸세요 잖아요? 다시 모든 지적의 전제는 다시 쓰라는 거에요. 다시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근데 전문가의 조언에 대해서 집중하셔야 돼요. 제가 한 작품을 쓸 때였는데, 아마 타워 쓸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좋은 설정이라고 한 씬을 시퀀스를 만들었는데 그 비트를 만들었는데, 피디님이나 감독님이나 다 회의를 했더니 너무 어렵다는 거에요. 굳이 이렇게 둘러가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좀 더 쉽게 갈 수 없냐, 가는 게 좋지 않겠냐 그래서 제가 아 이게 뭐가 어렵냐고 그리고 그렇게 영화를 그러면 유치원 애들이 보는 거냐고 막 성격 안 좋으니까 대들었죠. 그런데 나중에 그 같이 동석하셨던 팀장님이 식사자리에서 조용히 이제 저한테 그 자리에서 말씀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분은 성격이 좋은 분이시니까 성격 나쁜 제가, 발끈할까봐 뒤에서 조용히 말씀해주시는 거에요. 유작가님 그때 그 시나리오는 자기가 투자사 막내직원부터 지금 팀장까지 오면서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기는 이렇게 크리스마스 영화나 가족 영화는 시선을 중2에 시선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게 좀 크게 저한테 팅 하고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내가 ‘이게 어려운가요?’ 라고 물어봤는데, ‘그냥 화면으로 지나가면서 툭툭 던지고 가는 대사들을 뭐 중2의 시선인 아이들이 그 가족들이 우리 연세 드신 어머니, 아버님들이 툭툭툭툭 들어오면 그게 팍팍팍 이해가 되냐’ 라고 물어봤을 때, 제가 가지고 간 비트가 자신이 없더라고요. 근데 그 말이 계속 오래 남아있었어요. 그때는 ‘아유 그렇군요. 제가 몰랐어요. 너무 감사해요’ 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글쎄요?’ 이러고 집에 갔거든요? 근데 그 이야기를 아직도 제 마음속에 갖고 있고, 저와 만나는 멘티들이나 후배들에게 그 얘기를 꼭 해줘요. 이거는 너무 고급스럽고 좋은 대사인데, 좋은 설정인데 너무 좋은데, 이게 관객들이 봤을 때, 쉽게 이해가 됐을까? 어떤 팀장님이 내가 골질 할 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 하고 아직도 후배들에게 해주는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일하시면서 남들이 해주는 조언에 대해서 특히 전문가들이 해주는 조언에 대해서 무조건 ‘네,네,네’ 하고 하라는 게 아니에요. 작가의 지론이 있어야겠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은 굳이 멋 부리겠다고 이거를 어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는 거,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는 거니까. 아이디어 검증 부분에 제가 정리한 부분은 검증은 만든 사람이 가장 독하게 해야 해요. 왜냐하면 여러분, 나의 아이디어는 나에게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제일 주관적이에요. 내 아이디어에 대해서 근데 그런 내가 저렇게 철저하게 나를 독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이 얘기는 개인적인 얘기가 될 수 있고, 힘을 받을 수 있는 얘기가 되기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아이디어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들 관계자들 그리고 전문가들 그런 조언들에 귀를 기울여서 버려야 될 것들에 대해서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 때, 오히려 그게 나중에 보면 나의 아이디어를 빛나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