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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언제부터 봤니? 웹툰의 역사! 창의동반 담당자 2017-03-02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웹툰 구독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웹툰은 스낵컬쳐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웹과 카툰의 합성어이다. 대한민국에 정착된 고유의 웹코믹 플랫폼인 웹툰은 현재 큰 규모의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웹툰은 언제부터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했을까?


1990년대 후반: 가능성의 시작

사실 대한민국 웹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초의 웹툰은 1996년 한희작 작가의 <무인도>이다. 뒤이어 한 일간지에 실리던 <광수 생각>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었다. 




▲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2000년대 전반: 웹툰의 탄생과 발전

 2000년으로 들어서면서 <스노우캣>, <파페포포 메모리즈>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웹툰의 원조격 작품으로 남게 된다. 이후 사람들이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나 개인홈피에서 만화를 그려 연재하기 시작하며 웹툰이 알려졌다. 2003년 다음 포털에서 ‘만화 속 세상’이라는 세로 스크롤 방식의 웹툰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웹툰이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특히 강풀 작가는 <순정만화>를 통해 1일 조회 수 200만 건을 기록하는 등 여러 작품들로 독자들은 물론 웹툰 업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 서울 강동구 신내동 강풀 만화거리




2000년대 후반: 웹툰 업계의 르네상스 시대 

엠파스, 파란, 네이버, 야후에서도 웹툰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웹툰 업계는 점차 커져가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지식인 서비스를 통해 다음으로부터 1위 자리를 빼앗아 온 네이버의 ‘네이버 웹툰’서비스는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기세로 팬들을 형성했다.


특히나 2006년은 웹툰 역사에서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라는 전설적인 작품이 시작되었으며, 네이버에서는 ‘베도(베스트 도전)’라고 불리는 코너가 등장해 수많은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어 웹툰 시장을 넓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2006년에는 웹툰의 영화화가 시작되었다. 강풀 작가의 <아파트>가 그 시작으로 비록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웹툰이 또 다른 형식으로 재가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의의가 크다.


 




▲ 조석 작가 <마음의 소리>




2010년대 전반: 스마트폰과 웹툰의 만남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웹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즉,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웹툰의 접근율이 높아졌고,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웹툰을 찾게 되었다. 그만큼, 웹툰의 소재 또한 다양해졌는데 육아, 요리, 다이어트, 직장, 취업, 역사 등을 소재로 한 가지각색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마트폰을 통한 감상은 댓글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를 했다. 댓글은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댓글은 작가의 숨은 의도나 전문적인 용어를 설명해주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독자가 웹툰의 스토리 전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





2010년대 후반 그리고 전망: 웹툰의 본격적인 미디어 믹스

여러 인기 웹툰들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어오고 있는 추세이다. 웹툰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으며, 최근 웹툰은 영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연극, 게임 등으로까지 발을 넓히는 중이다. 사실 웹툰을 2차 저작물로 개발을 했을 때, 웹툰의 인기와 2차 저작물의 흥행 여부는 비례하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한 사례들과 실패한 사례들을 비교분석하여 단순히 원작의 유명세에 편승하지 않고 장르적 적합성과 연계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키워나가 대한민국 웹툰이 더 사랑받을 수 있길 바라는 바이다.


 


▲ 드라마에 이어 영화 제작을 확정지은 순끼 작가의 <치즈인더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