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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터이야기] 한국인의 제2의 주식,라면 Hit. 6209 2021-11-01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의 모든 것

  

라면 이미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라면인건가 AKMU(악뮤) 노래 가사 中-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을 가사에 넣어

인기를 끌었던 악동뮤지션의 명곡

라면인건가 한번 쯤은 흥얼거려 보셨죠?


이렇게 대중들에게 친숙한 ‘라면’은 

75년 전에 등장해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한끼 대표 메뉴입니다.

75년 전에 등장 했다니,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라면‘은 어떻게 등장 했을까요?


1945년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 

각각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습니다.


*신탁통치: 유엔의 신탁을 받은 국가가 유엔 총회 및 신탁통치 이사회의 감독을 받아 일정한 지역이 자체 통치 능력을 갖출 때까지 대신 통치해 주는 제도로, 유엔 헌장 제12장, 제13장에 규정되어 있다. 

신탁통치를 받는 지역을 "신탁통치지역"(trust territory)이라 한다.


또한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과 일제의 심한 간섭으로

식량 문제도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1953년, 

휴전 이후 미국은 우리나라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밀가루,분유 등을 우리나라에 지급해 주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저렴하게 기업에 제공하였고 이를 계기로

 제분, 제당을 중심으로 한국 식품산업이 등장하게 됐지만 

국민들의 굶주림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죠.

라면을 먹고있는 소년 및 라면 주전자 이미지

#꿀꿀이 죽과 ‘라면대부’ 전중윤


그렇게 한국의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고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까지 더해져 굶주림은 날로 더 심해져 갔습니다.


그때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모아

끓인 꿀꿀이 죽을 먹기도 했는데 

이마저도 그나마 돈이 있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죠.


그래서 당시 남대문시장에는 꿀꿀이 죽을 파는 노점이

다수 등장했고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노점 앞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는 장면을 보곤 

보험 일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연수 차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에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이 머릿속을 스쳤고

라면 개발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라면 및 면발 이미지


1961년 전중윤(삼양식품 회장)은 라면의 핵심인 면을 튀기기 위해 

식용유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하고 끝없는 라면 연구에 

돌입하기 시작합니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라면 생산에 필요한 노하우와 

기계를 전수해줄 파트너 ‘오쿠이 기요스미’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 라면의 첫 걸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라면을 먹고있는 방송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미지

#1963년, ‘삼양라면’ 등장 그 당시 반응은?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습니다. 

처음 라면이 등장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지금과는 다르게 그 당시 라면은 사랑을 받지 못 했습니다.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양한 라면 광고와 시식 행사 등으로 

라면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면서 라면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 즉석국수? 


‘즉석국수’ 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말그대로 국수가 떠오르지 않나요?

아니요! 여기서 말하는 ‘즉석국수’는 북한 정식 라면 명칭입니다.

한때는 ‘꼬부랑국수'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즉석국수'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즉석국수’는 언제 등장 했을까요?

 

1970년대 중반 일본 조총련 사업가와의 합작으로

북한에 ‘애국 국수 공장'이라는 라면 공장을 개설하면서 

라면을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라면의 발전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과 개성공단을 통해 

외국의 라면이 북한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북한 지방에서도 라면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해 운송비와 인건비가 라면 값에 추가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북한의 ‘라면’은 고급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그래서 2000년 평양에 있는 ‘대동강 즉석 국수 공장'에서 

스프가 들어간 인스턴트 라면의 생산을 시작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게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는 없었습니다.

일명 ‘노동자 라면’이라고 불리면서 평양의 라면은 한국산에 비해 

면발이 쫄깃하지 않고 맛도 형편없다는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양 라면은 북한 화폐로 800원 정도로 팔고 있는데 

북한에서 중국라면은 1,500원 정도

 한국 라면은 거의 3,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채끝살 짜파구리 , 불닭게티와 같이 

라면과 라면으로 섞어먹거나 

다른 재료를 조합해 넣는 라면 별미요리 처럼  

북한에서는 라면에 두부를 넣어 두부라면을 특식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라면에 담긴 역사부터 북한 라면까지 알아봤는데, 어떠셨나요?

한국인의 제 2의 주식,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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