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아신전>, <슬기로운 산촌생활>, <해치지 않아>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시즌 드라마의 스핀오프! 연속성에 의한 익숙함, 지루함이라는 시즌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선 것인데요. 실제로 <킹덤;아신전>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다음 시즌에서 이야기를 확장하려면 필요한 과거를 소환하고 설명하는 스핀오프가 큰 도움이 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시즌 드라마의 특성상 고정 시청팬층이 있다는 점에서 예능형 스핀오프는 제작진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죠. 시즌 드라마의 달콤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국내 제작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이번 시간에는 노도철 피디님과 함께 <검법남녀>의 치열한 제작 스토리를 들어볼까요?
아) [이유 있는 시즌 드라마의 성공법칙]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어떻게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노도철 PD님 함께 해주셨어요. 피디님 어서오세요!
노) 안녕하세요.
아) 저희가 지금까지 시즌제 드라마의 특징 먼저 살펴봤고, 그리고 시즌제 드라마의 캐릭터, 타켓 시청층을 결정해서 반복되는 일상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시즌제 드라마를 기획하는 방법까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자, 그럼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작으로 바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노) 네, 이제 제작해야겠죠? 그래서 이번 차시에는 제가 기획하고 연출한 <검법남녀> 시즌1을 중심으로 시즌제 드라마의 제작 경험담을 위주로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현장의 생생한 고민과 대처방법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향후 시즌물을 준비하는 연출자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실제 우리 피디님의 생생한 경험담이라고 하니까 얼마나 재미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데요. 자, 그럼 맨 처음 어떻게 이걸 시작하게 되셨는지부터 차근차근 여쭤볼게요. 어떻게 시즌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신 걸까요?
노) 2017년 미니시리즈 <군주>가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 차기작에 대해서 연출에 대한 룸이 보장됐기에 다음 장르는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하이브리딩 수사물, 장르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미드 <번노티스>나 일드 <히어로>를 재밌게 봤고, 수사물 에피소드 방식을 따르면서도 코미디가 하이브리딩 된 장르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대본을 찾고 있었죠.
아) 사실 수사물과 코미디를 섞은 장르물을 좀 일반적으로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둘을 생각한 이유가 따로 있으실까요?
노) 무엇보다도 제 경험상 제가 시트콤과 드라마를 같이 했기 때문에 그런 어떤 제 개인적인 경력의 특이성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 제 관점에서 봤을 때 그 당시 장르물이라고 하면 너무 피가 튀고 잔인하고 하드보일드 터치만이 장르물이다, 꼭 굳이 저런 잔혹한 방식으로 일부 어떤 마니아 타겟 시청층을 위한 그런 장르물이 아니라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물에 대한 틈새가 있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제가 목표를 찾았고요. 이런 목표, 제 목표를 동참하기 위해서는 장르물도 잘 쓰면서 코미디 터치도 할 수 있는 작가를 찾아야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민지은이라는 신인작가가 쓴 <검법남녀>라는 대본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로코물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래서 오히려 검사가 신입 남자 검사였고, 베테랑 여자 노처녀 법의관이 썸을 타면서 수사하는 연애 로코물이었어요.
아) 로코면, 로맨틴 코미디, 그럼 처음 생각하셨던 장르물이 아니었던 건데,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에서 뭔가 느낌을 받으신 거예요?
노) 네. 일단 로코로서는 저는 약간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는데, 제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부검 장면의 디테일이 너무나 디테일이 좋았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부군이 국과수 실제 근무도 하셨고 그래서 그랬는지 도와주셔 가지고 ‘아, 너무 디테일이 좋다’ 그래서 로코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대사도 약간 코믹적인 터치가 있었고. 그래서 2017년 10월 정도에 작가 소속사인 HB엔터테인먼트의 문보미 대표님께 찾아가서 홀홀단신 찾아가서 “제가 이 로코 작품을 장르물로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했더니 당연히 승인을 해주셨고, 바로 한... 겨울부터 수정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아) 네... 이 로코물이 장르물로 바뀐건데 사실 이게 쉽지 않은 수정일 것 같거든요. 어떤 큰 틀의 수정방향을 잡고 움직이신 걸까요?
노) 거의 대폭적으로 다 바꿨는데요. 그 중에 가장 큰 핵심은 일단 남녀 주인공의 포지션 교체였습니다. 즉 법의관은 늙은 남자로 하고 검사를 신인 여자 검사로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아) 네... 이렇게 캐릭터 성별을 바꾼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노) 직업적으론 아무래도 당시 뭐 검사가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법의관은 보조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하이어라키 구조인데, 이것을 한 번 그래서 항상 남자가 앞에서 지휘하고 여자가... ‘이것을 뒤집어보면 어떨까?’ 그런 시도가 작가들이 흔쾌히 받아들여주어서 진행이 됐는데 사실 처음부터 대사를 다시 써야 되는 그런 작업이었습니다.
아) 네, 우리 작가님들께서 흔쾌히 받아주셨지만 사실 그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네요. 네. 그렇게 해서 2017년 겨울에야 대본 작업을 시작하셨다 말씀을 해주셨었는데 그 바로 다음해죠? 2018년에 편성심사를 받으셨다고요?
노) 네. 정말 빠듯한 스케쥴인데 아마 들으셔도 믿지 못하실 거예요. 1월달, 1월에는 군주 촬영하느라 못 간 한 달 휴가를 다녀왔고요. 1월 말이 다가오니까 갑자기 5-6월, 그 해 5월에 들어가는 미니시리즈를 해줄 수 없는지 제안이 데스크로부터 들어왔습니다.
아) 원래 저희가 방송국 시스템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갑작스럽게 제안이 오기도 하는 거예요?
노) 아닙니다. 그렇게 급하게 4개월 남겨놓고 들어오진 않는데요. 그게 알고 봤더니 월드컵 기간이어가지고 이게 편성이 퐁당퐁당 편성이라고, 방송이 계속 죽는 거예요. 그래서 다들 들어가기 싫어했고, 더구나 상대편 드라마는 베테랑 서숙향 작가가 쓰는 장혁, 정려원, 준호가 캐스팅된 <기름진 멜로>가 정해져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시간에 들어오길 꺼려해서 일어난 돌발적인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 결국에 사실은 남들은 맡고 싶지 않아 하는 그 돌발상황이었는데 피디님께서는 수락을 하신 거네요?
노) 네. 이참에 그렇게 꿈꿨던 장르 드라마를, 시즌 드라마를 할 수 있겠단 생각이 있었고요. 그래서 실은 대본적으로는 천천히 개발해서 연말쯤이나 완성하려고 했는데 ‘아이, 이게 기회다’ 해서 작가들을 푸쉬해가지고 대본 1-2회의 초고를 들이밀었죠. 그래서 이런 위기상황에 그렇게 진짜 제가 해보고 싶었던 에피소드 장르물을 지극히 보수적인 공중파 드라마 시장에 한 번 도입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해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월에 대본외주심사를 2월 초에 했는데, 그 사이에 동시에 3-4부 대본 작업에 들어갔죠.
아) 말씀주신 외주심사 결과도 사실은 좀 안 좋고, 심사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고 제가 들었거든요?
노) 기존 드라마 문법과는 너무 다르게 에피소드 방식으로 씌어 있었기 때문에 외주심사위원들이 모두 멘붕이 왔고, 무려 한 달을 끌었어요. 5월에 들어가는 드라마를... 그래서 2월 말에 가서 마지못해 오케이를 해주셨습니다.
노) 회별 에피소드 방식의 미니시리즈 이런 장르물이 공중파 최초이다보니 외주심사에서 다들 우려가 컸고 큰 스토리가 없어서 ‘과연 이게 되겠냐’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에피소드만으로 드라마가 가능하겠냐?’ 여러 가지 압박, ‘이거 고쳐라’, ‘스토리 넣어라’. 제가 버티니까 딱히 대안도 없고 저는 마음속으로 ‘이 기회 아니면 장르물 해 볼 수 없다, 공중파에서.’ 이렇게 버텼죠. 당시 드라마 시청률이 이미 많이 하락한 추세였고 <김비서가 왜 이럴까>를 보면서 그래, 고정팬 층만 딱 확보해도 통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믿음도 있었습니다.
아) 자, 어려웠지만 이렇게 해서 외주 심사도 통과가 됐습니다. 그 다음은 어땠을까요?
노) 생각해보세요. 2월 말에 심사가 끝났는데, 방송은 5월이에요. 이제 2개월밖에 안 남았어요. 다들 믿지 못하실 거예요. <검법남녀>가 빨리 들어간 건지... 대본이 이제 4개밖에 안 나왔는데, 신인작가는 에피소드 장르 대본 쓰는데 처음이니까 너무 진도가 안 나가고 있었고, 캐스팅 할 시간, 세트를 제작할 시간, 너무 너무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 네, 모든 게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대본이 빨리 나와야 했을 것 같아요.
노) 네. 그래서 일단 제작사 대표님을 설득해서 원영실 작가를 공동작가로 보강하고 3명의 보조작가를 붙이고, 조연출 2명이랑 저까지 해서 총 8명이 대본 작업 하고 모니터링에 계속 매달렸습니다.
아) 이거는 제가 배웠던 게 좀 생각이 나는데 이게 그 멀티창작시스템인 거죠?
노) 맞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일단 “씬정리”라고 일단 다 모여서 일단 이야기 매씬의 순서, 장소, 인물 등을 포스트잇에 붙여서 정리를 하고 씬별로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 두 명의 메인작가가 서로 나누거나 동시에 써서 글을 쓰게 되는데, 반드시 씬정리된 그것에 약속을 지켜야 되고요. 그렇지만 반드시 여기서 취사선택은 연출자가 해야 되는 어려운 방식이에요. 그런데 MBC에 미드 <로스트> 메인작가가 방문한 적이 있어서 제가 한 번 질문을 드려봤어요. 그런데 그들도 자유로운 미국도 똑같은 방식을 차용하고 있더라고요.
아) 오~ 미국도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 멀티창작시스템이 잘 돌아가기 위한 핵심 사항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노) 네... 미국 <로스트>도 마찬가지지만, 크리에이터가 맨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이 일관되게 캐릭터와 스토리를 정의해주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더라고요.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아까 말씀드린 씬정리라고 하는 규칙 안에서 작가들이 그 크리에이터가 그린 선을 지키면서 철저하게 작가들 사이에 ‘이 선을 넘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멀티창작시스템의 핵심이었습니다.
아) 네, 결국 말씀 들어보니까, 정말 그 한 명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 네. 어떤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본인의 취향, 개성대로 다 쓰고 싶죠. 그리고 상대편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런 멀티창작시스템은 크리에이터 혹은 연출자가 아주 고통스럽게 그 작가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면서 취사선택을 해줘야 하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하게 됩니다. 이게 실은 쉽지가 않아요. 드라마에서도, 실은 공동작가 시스템에서 많이들 싸우십니다. 이 갈등은 피할 수가 없고요. 하지만 이것을 상호 동의 아래 이 규칙에 대해서 지키겠다, 약속하고 들어가야 가능한 작업입니다.
아) 이외에 다른 과정은 어떻게 진행이 됐을까요?
노) 2월 말에 통과됐는데 3월 한 달 동안 대본 작업과 동시에 캐스팅을 해야 했습니다. 캐스팅을 해야 했는데, 40대 역할은 백범, 주인공 역에 후보리스트가 있었지만 저희들이 대본 드려봤지만 너무 대본이 어려워요. 이게 무슨 수술씬도 아니고, 법의학 용어가 입에 붙질 않고. 그래서 다들 이걸 대본을 힘들어 했습니다. 거기다 성격적으로 훌륭하냐. 영웅이 아니잖아요? 일단 백범이라는 사람이 외골수에다 소시오패스에다 비호감 남주였기 때문에. 스케줄은 급한데 주인공이 결정되지 않아서 실은 압박감이 상당했습니다.
아) 네... 시간도 얼마 없어서 어렵게 캐스팅한 그 고심했던 남자 주인공, 정재영 씨였던 거죠.
노) 호기롭게 첫 미팅하던 날 정재영 씨한테 “이 역할 놓치시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하고 일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그 어리숙한 연기에 넘어갔는지 캐스팅에 성공했습니다.
노) 주인공 캐스팅에 비하인드, 당연히 있습니다. 회사 측은 좀 더 광고와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는 모 배우를 원했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상품성을 배제하고 연기력와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정재영 씨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지나치게 까다로운 대사로 인해서 모든 분들의 거절이 이어졌고 다행인지 제가 원하는 대로 캐릭터에 적역인 정재영 씨를 무사히 캐스팅할 수 있었습니다.
아) 자, 그럼 다른 배우 분들은 어떻게 좀 캐스팅을 하신 걸까요?
노) 네 강동식 역에 박준규 씨, 그리고 천미호 역에 박희진의 캐스팅은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제가 지향하는 하이브리딩 장르 즉, 장르물 플러스 코미디의 포석을 위해서 연기랑 코미디가 다 가능한 멀티형 배우의 캐스팅을 시도한 것이고요. 그 다음, 가장 어려웠던 캐스팅은 스텔라 황, 스테파니가 맡았던 스텔라 황 캐릭터였는데, 주로 미드나 제가 좋아하는 에 나오는 천재 블랙 고스족 같은 여자 캐릭터인데, 사실 이걸 국내드라마에서 구현해 내기는 쉽지도 않고, 또 영어 반, 한국어 반, 이게 과연 한국 사람들한테 통할까, 가장 고심하고 연기 톤도 아마 여러 번 바꿔봤던 스테파니가 아주 열심히 했던 가장 힘을 쏟은 배역이었습니다.
아) 네, 그렇게 신선한 캐스팅이 또 탄생을 했었던 것 같은데, 여자 주인공 캐스팅도 또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거든요.
노) 네. 이게 다 정재영 씨 때문인데요. 일단 여주 캐스팅이 어려웠던 이유는 일단 남주와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로코를 할 수도 없고 멜로를 할 수도 없고... 대사는 너무 어렵고. 또, 검사.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여배우, 주인공 여배우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고요. 그래서 당장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야 되는데 아마 촬영들어가기 전 3일 전인가, 고심에 고심을 하다가 <엄마의 정원>을 같이 했던 정유미 씨에게 한 번 해보자, 합류를 제안했고 좀 안타까운, 개인적으로 좀 미안했던 점은 정유미 씨가 한 번도 장르물을 좀 준비를 해야 되는데, 전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촬영 3일 전에 은솔 역을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아) 3일 전에 여주인공이 캐스팅이 됐으니 정말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국 그렇게 촬영이 들어가시게 된 거죠?
노) 네. 4월 첫째 주에 대본 4개 들고 급조한 캐스팅으로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런데 무엇보다도 국과수 세트 장면이 많았는데 국과수 세트는 무려 한 달 이상 걸려서 4월 하순에나 돼야 완공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국과수 씬만 다 미뤄놓고 야외씬부터 정신없이 찍어나갔습니다.
아) 아니, 국과수 드라마인데, 국과수 씬을 못 찍으셨다고요?
노) 네. 그래서 4월 20일 정도 돼서야 첫 국과수 세트 녹화가 들어갔는데,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종합병원2>라는 의학드라마를 찍어봤기 때문에 이게 의사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대사만 하는 거 말고, 좀 더 수술씬이 이뤄지려면 의사들이 유기적으로 가위를 이렇게.. 말 안 해도 딱딱 돌아가면서 움직임이 있는 장면을 찍고자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첫 부검씬이 하루 종일 걸렸는데, 거의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아, 이 드라마를 어떻게 찍어야 되나’, 정말 <검법남녀>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 아마 일부는 속으로 ‘그만 둘까’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도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는 거잖아요!
노) 네, 맞습니다. 이렇게 부검씬을 아주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다뤘던 드라마가 없다보니 롤 모델도 없었고 그래서 저희가 하나하나 순서를 정하고 저희들이 좀 나눴어요. 실제 부검씬은 아주 아주 밝은데, 미세한 흔적을 찾아야 되기 때문에. 그러다보니까 너무 급하게 지은 세트나 이런 장비의 허술함이 다 노출되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어둡게 하고 저희도 현실과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핀과 탑 조명을 이용해서 좀 더 극적으로 보이는 부검실을 만들었고요. 그게 좀 더 으스스하게 보이게... 이런 조명을 재셋팅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쳤고요. 다행스러운 점은 부검씬이 거듭될수록 배우와 스텝들이 조금씩 익숙해졌고요. 조금씩 스피드가 났고요. 감격적인 것은 극이 끝날 때쯤에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배우들이 스스로 정해진 루틴에 따라서 부검씬을 찍을 수 있었어요.
아) 네... 배우들이 알아서 스스로 동선을 맞추는 경지에 이르게 된 거죠?
노) 네. 의 특집에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적이 있었거든요. 타란티노 감독이 되게 감동을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왜 그러냐하면 영화는 매번 감독이 하나하나 낯선 세트장에서 하나하나 동선 디렉팅을 하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세트장에 갔더니 그 배우들이 10년 동안 시즌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길반장이 알아서 움직이시고, 다들 알아서 움직이는 거예요. 오히려 감독만 혼자 처음 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배우들이 알아서 동선을 착착착하니까 이런 현장은 자기가 처음 본다고, 거기서 엄청난 영화 프로세스와 너무나 다르다 감동 먹었단 얘기를 제가, 에피소드를 읽은 적 있는데 바로 똑같은 일이 검법남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아) 네, 이런 저런 사건을 겪어가면서 드디어 이렇게 촬영한 <검법남녀>가 첫 방송을 타게 되는 날이 왔죠?
노) 5월 14일, 2018년 5월 14일인데요.
아) 당시에 이 검법남녀 드마라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노) 네. 매회 각기 다른 에피소드, 이게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일까? 이런 반전추리 라인을 채택을 했고요. 그리고 이제 동시에 히든 큰 스토리, 스토리의 연속성을 위해서 백범의 과거사에 비밀라인을 매회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노출하는 히든라인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물론 너무 급하다 보니까 잘된 부분도 있고, 몇 가지 시행착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 이 시행착오라고 하면 어떤 것들 조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노) 일단 뭐 정재형 형님께서 너무나 엄청난 호연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신 백범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데 성공했지만 초반 과거의 비밀을 캐는 강현 검사와의 충돌에서 다소 디렉팅이 과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런 시즌 드라마의 경우는 극적인 휘발적인 연기톤을 지시하면 안 되고, 좀 더 일상적인 일상적인 형사, 일상적인 법의관, 일상적인 검사, 좀 더 연출적인 디렉팅 면에서 일상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배웠고요. 또 백범의 과거라인에 대한 소구력이 초반 강하게 어필이 되지 못했는데, 그게 좀 아쉬움이 있어요.
아) 검법남녀의 드라마는 홀수 회와 짝수 회의 진행방식도 조금 달랐잖아요. 어떤 식으로 진행된 것인지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실까요?
노) 실은 이게 <대장금>에서도 활용된 방식인데요. <대장금>에서도 실은 자세히 보시면 궁중에 매회 어떤 큰 사건이 하나 생기고 그럼 그 사건을 과연 어떻게 될까? 홀수 회에서 던지고 짝수 회 초반부에 그 사건이 해결됩니다. 후반부에는 또 다른 사건을 제시하면서 그 다음 일주일을 기다리게 만드는데요. 마찬가지로 검법남녀에서도 홀수 회에서는 범인이 과연 누굴까? 짝수 회 초반부에서는 범인이 누군지를 가르쳐주고 또 그 다음 회와 동시에 백범의 과거 라인, 이것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 그렇게 운영하였습니다.
아) 네, 결국 짝수 회에서 그 호기심을 느낀 시청자라면 다음 홀수 회는 꼭 봐야 되는 그런 구성이었네요. 이렇게 방송이 진행되면서 남자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들도 의견이 조금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노) 정유미 씨가 맡은 은솔이라는 신입 여검사 캐릭터가 기존에 뭐 흙수저 출신의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부잣집 딸에 약간 민폐 신입 여검사다 보니까 다소 따가운 질책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은 너무 급하게 준비기간 없이 투입돼서 장르물을 소화해냈기 때문에 본인이 고군분투 노력했지만 다소 냉정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 네, 3일 만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이런 반응에 대해서 피디님께서도 느낀 부분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노) 연출의 입장에선 아 시즌제 드라마 캐릭터 빌드 업에는 아까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차분하고 일상적인 디렉팅이 요구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요. 이런 어떤 작은 경험과 아픔들이 모여서 시즌2에서는 조금 준비기간이 보장된 시즌2에서는 좀더 성숙해지고 차분해지는 은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다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 ‘보수적인 지상파 방송이다’ 라는 말씀을 앞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거기서 장르물이 인정받은 감동의 순간이었어요. 시즌1이 잘 마무리가 된 덕분에 시즌2도 준비하실 수 있으셨던 거죠?
노) 네, 이게 월드컵 시즌하고 겹치면서 정말 퐁당퐁당 편성의 어려움과 또 상대편의 강력한 라이벌 드라마 속에서도 무사히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잘 끝났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당연히 권선징악 엔딩을 기대했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시즌 드라마 법칙 때문에 가장 궁금하게 오만상의 사고사로 돌연사망하면서 시청자들이 ‘이게 뭐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고요. 그러면서 제 의도대로 게시판에서 ‘시즌2를 해달라’ 요청이 빗발쳤죠.
아) 이 정도 이야기를 들으면, 이거 다 계산된 전략이셨던 거죠?
노) 저로서는 모든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었고요. 특히, 이미 시즌1 마무리 정도에 밸런스가 조금 무너졌다고 했던 검사 쪽에 오만석 씨 베테랑을 집어넣으면서, 후반 투입하면서 저 나름대로 ‘시즌2 하겠다’라는 의지를 드러냈죠. 위에서 그 전까지도 시즌2 하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해보고 싶다 라는 그게 좀 강했고요. 그래서 결국 방송이 끝나고 ‘시즌2 제작을 해볼래?’ 타진이 왔죠.
아) 네, 그렇다면 시즌 2 제작에 앞서서 또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있으실까요?
노) 가장 급했던 것은 국과수 세트가 설치된 창고였어요. 그런데 이게 ‘세트, 창고 부수지마, 시즌2 내년에 할 거야...’ 그런데 이게 월5천만 원이 든대요. 제 고민의 순간이 5천만 원씩 매월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그런데 그 상태에서 대본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데, 시즌2를 할지 말지를 ‘언제 할래?’ 결정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고민 끝에 원체 시즌1 세트나 급하게 지어가지고 세트가 너무 시행착오가 많아서 카메라 감독하고 상의 끝에 부수고 제대로 짓자, 그래서 시즌2에서는 9억 원을 들여서 제대로 된 국과수 풀세트를 완성했습니다.
아) 네, 그렇게 시작된 시즌2 제작, 또 다른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노) 네, 당연히 그 다음 문제는 배우와 스텝들 간의 스케줄 조정 문제였는데요. 다행히 정말 럭키하게도 대부분의 스탭과 연기자들이 동참해주셔서 ‘진정한 공중파 시즌제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다’ 라는 멋진 네이밍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 네... 이렇게 지상파 최조로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을 하셨고, 또 거기에 따라 좋은 결과까지 얻으셨는데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와 닿으셨나요?
노) 이건 시즌제 드라마를 만들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건데요. 연출의 생각을 배우 그리고 스탭들한테 전달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그런데 시즌 드라마는 시즌2를 했던 스탭들, 특히 배우들은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랐어요. 수동적으로 드라마를 작업하는 입장이 아니라 이젠 내가 해봤기 때문에 연출자와 똑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이렇게도 해보겠다고 능동적인 참여를 했어요. 그리고 배우들 입장에서도 그냥 이렇게 연출이 시키는 거에 따라서 와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거 내 드라마예요’, ‘이거 내 역할이에요’ 하면서 굳이 연출이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이제 동선도 알고, 그 장소도 익숙하니까 좀 더 책임과 자부심을 느끼는 그런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아) 네 뭔가 정말 우리가 한 팀, 원 팀이 됐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지금까지 ‘어떻게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좀 나눠봤습니다. 아무래도 피디님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서 시즌제 드라마의 제작 현장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노) 네. 제 이런 경험들이 시즌물을 준비하는 연출자, 작가, 제작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저도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노) 감사합니다.
아) 네 그럼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시즌 드라마 주요 성공 사례를 통해 시즌제 드라마 기획 및 제작 노하우 제공
02. 강사 소개
노도철 (PD)
03. 강사 이력
- HB 엔터테인먼트 PD - MBC <검법남녀 시즌 1,2> 담당 PD - <군주-가면의 주인>,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1,2> 연출
연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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