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에서 문화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 이동은입니다.
최근 스토리텔링은 하나의 미디어에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를 융합하면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들이 만들어가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특징을 중심으로 IP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기획적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염두하고,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양한 양상으로 미디어를 융합하여 스토리를 확장하면 플레이어들은 더 즐거운 스토리텔링을 경험할 수 있고, 게임 개발사들은 콘텐츠에 대한 높은 충성도로 비즈니스의 확장과 혁신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번 시간을 통해 트랜스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개념과 특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텔링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일까요? 일반적으로 어떤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한다고 하면 그 콘텐츠에 담겨진 내용, 즉 스토리를 연구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연구는 스토리 자체는 물론이고 스토리가 전달되는 형식인 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인 미디어가 달라지면 그 안에 담기는 스토리의 형식 또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가정했을 때 문자라는 미디어를 사용하면 ‘사랑한다’라는 글자로, 그림이라는 미디어를 사용하면 빨간 색의 하트 모양으로,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사용하면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두 볼이 빨개지며 수줍게 웃는 얼굴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스토리텔링의 진화를 살펴보는데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미디어와 결합하여 표현되어지는 과정 중에 스토리 생산자와 스토리 향유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와 ‘피드백’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story’, ‘tell’, ‘ing’의 합성어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미디어들도 함께 등장했습니다. 컴퓨터 게임, VR과 AR, 인터넷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하는 SNS 등, 뉴미디어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닌 패러다임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하는 시대가 되자 사용자들의 욕망도 다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뉴미디어의 대표적인 성질인 ‘인터랙티비티’는 사용자가 콘텐츠를 향유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사용자들은 콘텐츠의 일방적인 소비가 아닌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콘텐츠를 개조하여 제2, 제3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디어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사용자들은 꿈으로만 꾸던 욕망을 콘텐츠 창작으로 승화시키게 됩니다. 이른바 창작의 대중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창작의 대중화는 미디어 생존 전략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볼터와 그루신은 ‘재매개’ 이론을 통해 미디어간의 관계적 맥락을 연구한 바 있습니다. 재매개 이론이란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테크놀로지, 표현양식, 사회적 관습 등을 차용, 개선, 개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미디어의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전화의 메시지 전달 양식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일대일의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개선하여 1:多(독음 : 일대다)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청각 미디어입니다. 라디오가 전화의 성질을 차용하여 개조한 것은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하고 자리매김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른바 미디어 간의 재매개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간의 상호작용적 생존 논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미디어들은 서로 융합하기 시작합니다. 휴대폰이 전화라는 청각 미디어의 계보를 넘어 사진, 영화, 음악, 메모, e-mail 등 다양한 미디어를 재매개하면서 컴퓨터를 닮아가고 있는 현상을 생각해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디지털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스토리텔링 양식 또한 새로운 변혁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입니다.
컨버전스 컬쳐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주창자인 헨리 젠킨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다른 미디어로 퍼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이야기가 하나의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 옮겨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스럽게 OSMU가 떠오르시나요? OSMU는 이미 성공한 원작에 대한 반복으로서 ‘다시 쓰기’의 개념으로 콘텐츠 산업의 경제적 논리에 발맞춰 등장했습니다.
대중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와 스토리를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반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논리입니다. 때문에 OSMU의 전제는 성공한 원작입니다. 그러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경제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OSMU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랜스미디어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 경험의 폭과 질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그 중심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프래튼은 OSMU 혹은 미디어 프랜차이즈에 있어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작은데 반해 트랜스미디어는 결과로서 전체가 부분의 합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사용자들이 매체별로 흩어져있는 스토리 조각들을 적극적으로 모으고 연결시킴으로써 단순한 부분의 합 이상의 스토리를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을 만나게 된 사용자들의 다변화된 욕망에 부합하기 위해서 나타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OSMU가 하나의 이야기가 성공했을 때 다른 미디어 형식으로 리-텔링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미디어들이 이야기의 부분이 되고 그것들의 퍼즐이 맞춰졌을 때 비로소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체, 세계관을 완성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배분하고, 사용자는 하나의 미디어에서 부족했던 스토리를 다른 미디어 경험으로 채워나가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복수의 미디어를 경험하게 하고 매체마다 새로운 스토리텔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총체적 가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초창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마크 롱의 주장처럼 최소 세 개 이상의 미디어를 동시에 활용해야 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미디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스토리텔링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트랜스미디어는 안드레아 필립스의 정의처럼 다매체, 단일하고 통일된 스토리와 사용자 경험, 매체 간 불필요한 반복 방지 정도로 보다 폭넓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헨리 젠킨스는 트랜스미디어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어야 하며 둘째, 각각의 새로운 텍스트가 전체 스토리에 분명하고도 가치 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셋째, 각각의 미디어는 자기 충족적이어야 합니다. 즉 영화를 보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게임을 즐기지 않아도 드라마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어떤 미디어든지 전체 프랜차이즈로 가기 위한 입구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트랜스미디어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마리카에 대한 진실>를 예로 들어 이 네 가지 특징을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카에 대한 진실>은 결혼식 날 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부 마리카를 찾는 신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는 TV드라마, 시사 토론 프로그램, 인터넷 블로그, GPS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 등 4개 이상의 미디어 플랫폼을 동시에 활용하면서 스토리텔링 합니다.
이이서 두 번째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메인 스토리 라인은 마리카의 남편이 마리카의 행방을 뒤쫓는 이야기로 전체 스토리의 중심 뼈대 역할을 합니다. 시사 토론 프로그램은 실제 스웨덴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종 사건들의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이 허구적 이야기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가 거듭되면서 인터넷 블로그와 모바일 게임 등을 통해 실제 참여자들의 활동을 비활동자들에게 중계하며 참여자들의 액션을 관찰하고 결집시키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블로그와 모바일 게임에서는 드라마의 주인공의 역할을 참여자가 대신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참여자는 블로그를 통해 픽션 속 주인공이 되어 ‘마리카 찾기’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미디어에서 새로운 텍스트가 전개되기는 하지만 이 모두를 경험해야 전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여자의 참여도에 따라 미디어의 경험도는 다르지만 게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드라마의 스토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젠킨스가 말하는 세 번째 특징입니다.
네 번째 특징 또한 이 사례는 충족하고 있습니다. 어떤 미디어로 스토리텔링 경험을 시작하든지 거대한 세계로의 입장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특정 콘텐츠나 기업의 홍보/마케팅을 위한 방법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는 독립적인 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개발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스토리텔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문제 기반의 사건을 스토리텔링합니다. 참여자들은 이를 풀어내기 위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콘텐츠에 참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와 참여자 모두 책, 영화와 같은 시각 중심의 시대의 콘텐츠에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차원의 스토리텔링이 발생합니다. 자연스러운 융합과 창발적인 스토리텔링이 발생하고 총체적인 경험과 문화적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오늘날 우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트랜스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개념, 특징, 그리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트랜스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개념과 특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