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의 질문을 통해서 이 앞의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Q. 프로 작곡가들은 작곡할 때 평균적으로 얼마 정도의 작업시간이 소요되는지? 그리고 비전공자의 경우 작곡을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지?
윤상 : 저는 속도로 따지면 아마추어에서 프로처럼 곡을 써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뚝딱 쓰는 거! 물론 뚝딱 써서 잘 된 곡도 있지만 보통은 뭐 어떤 히트곡은 한 번에 나온다고 하는데, 그걸 전적으로 꼭 그렇게 써야만 모든 곡이 그렇게 영감을 받아서 한 번에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근데 지금 질문해주신 분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저는 제 곡 중에 7년이 걸린곡이 있어요. 마무리가. 작사 빼고, 작곡만요. 보통 벌스(verse)라고 하죠.
예전엔 동기는 두 마디에서 네 마디. 근데 벌스라 함은 여덟 마디, 열여섯 마디를 만들어 놓고 뒤에 붙을 후렴이 너무너무 언제 그 곡을 생각을 해도 맘에 안 드는 게 나와서 마무리 할 때 까지는 한 7년 정도가 걸린 것 같아요. 근데 그거는 제가 제 앨범에 넣는 곡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기다릴 수가 있었죠. 근데 만약에 이게 내일모레 녹음을 해야 되는 걸그룹의 곡이다. 그러면은 애초부터 그런 곡을 시작을 안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 곡은 <영원 속에> 라고 하는 제 6집 앨범에 담겨있는 곡인데요, 애초부터 그 곡은 그냥 ‘마음이 내킬 때 완성해야지’라고 했던 곡이었고, 어떤 조급함도 없었습니다.
근데 정말로 조급함 때문에 하루 만에 곡을 써서 만든 곡이 히트가 된 경우도 있었는데, 그 경험하고 비교할 때 과연 7년 걸린곡과 그 하루 만에 쓴 곡을 비교해서 나한테 뭐가 더 재밌었냐고 하면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빨리 썼다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늦게 만들었다고 또 좋을 것도 없고 대신에 넌 프론데 곡을 그렇게 빨리 못 쓰냐? 라는 누군가 잔소리를 한다면 거기에 대한 변명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억지로 하는 곡은 쓰겠지만, 그게 제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고요.
진행자 : 뭐 저는 그, 음악을 작곡하고 이러지는 못하는 사람인데 글을 쓰는 사람들한테 이야기 해 보면 아까 1부에서 잠깐 그런 얘기 했는데요. ‘작업의 속도는 마감과 입금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그것이 프로의 세계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프로란 사람들은 소위 세상에 그래도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사람들, 그것이 아마 또한 프로, 아마추어를 나누는 기준이 될 테니까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기가 만든 결과물이 어떻게 세상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한 말씀만 더 이제 작곡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중요한 이야기인데 잘 회자되지 않죠. 왜냐면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으니까. 작곡가들이 연주를 잘 해야 한다 이거는 안타깝지만 50년 전에 끝났습니다. 리는 한 때 음악가를 하나의 그냥 한 사람으로 봤어요. 음악가. 운동만 잘 하는 사람 보면 이 사람이 권투를 잘하나, 레슬링을 잘하나, 멀리뛰기를 잘하나 상관없이 운동선수죠. ‘음악한대’ 이러한 어떤 우리가 단순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곡가들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걸 개발도 못한 분들도 있다고 봐요. 악보를 보는 것과 작곡을 하는 능력은 전혀 다릅니다. 이 얘기를 감히 드릴 수 있는 건 저도 학교에 몇 억 원을 쓰고, 학교를 다녀보고 이야기를 드리는 건데요. 미덕은, 미덕이지만. 우리가 전자악기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작곡가들이 이제 악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거든요.
그 얘기는 우리가 집에서 전화 안하고 휴대폰으로 전화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과 똑같은 거예요. 오케스트라를 내 전화기로 열 수 있다. 결국 대중음악 프로듀서들은 그런 세상이 되어 있고, 어떤 현 평국을 위한 그 머리 아픈 스티어링 어레인지먼트(steering arrangement)는 이미 전문가 집단들이 생겨서 예전 같으면 그런 어떤 서로 간의 지식의 차이 때문에 무시하던 어떤 관습도 있었겠지만, 각자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은 다 최선을 다하는 사회가 됐다고 봐요. 그래서 예전에는 정말 그랬어요. 스트어링 연주자들이 오면 왠지 못 올 데 와 있는 듯한, 대중음악 연주 녹음하는데 오면 자기들도 왠지 괜히 가수들 오면 자기들도 인사들도 안 하고 이러니까 서로가 이렇게 있고, 녹음 끝나면 조용히 그냥 가고 이랬는데, 그러한 시대가 꽤 오래 갔다가 한 10년, 15년 전 부터는 음악이라는 안에서 다 웃을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자기 장점만 죽어라고 개발을 하면 누구나 작곡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왜냐하면 주변에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미, 이미 많이 존재해 있고, 또 여러분들이 특정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몇 가지 어플리케이션에 어떤 마스터가 되기에 이미 충분한 지식들이 공유가 되어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악보를 못 봐서 곡을 물론 악보를 잘 보면 그만큼 수월해 지는 거는 있겠지만 절대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그렇게 크게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진행자 : ‘악보를 못 본다거나, 혹은 연주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아주 좋은 시대에서 그것을 보완할 만한 충분한 다른 요인들이 있으니 ‘물론 악보를 볼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쉽게 할 수도 있는 부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을 보완할만한 충분한 다른 것들이 있으니 꿈을 포기하실 필요 없다’라는 애기를 해주셨습니다. 사실요, 앨비스 프레슬리라는 그 로큰롤의 왕이라는 인물도 악보를 못 봤어요. 재즈계에서 가장 그 전설적인 연주자라고 하는 아트블랙키라는 드러머도 악보를 못 봤습니다.
윤상 : 유명한 폴 맥카트니께서도 악보를 굉장히 싫어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진행자 :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 라는 걸 분명히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작곡도 잘 안 된다. 그러면 팝 칼럼리스트를 하시면 됩니다. 진짜예요. 제 인터넷에 있는 제 팝 칼럼리스트 3단계를 늘 밝히는데 음악학원에 등록한다. 제가 원래 드럼배웠거든요. 원장님에게 소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팝 칼럼리스트가 된다.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팝 칼럼리스트라는 마지막 직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여러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 작곡이 가능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윤상 : 정말 사랑받을 짓을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여러분, 몰라요. 지금 여기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감한 형제의 사연은 저도 다큐멘터리나 방송을 통해 많이 봤어요. 그래서 자서전 읽은 것만큼 저도 알고, 힘든 시간 겪은 것도 알고 그런데 아까 얘기한 어떤 인생에 있어서의 어떤 감정 얘기는 아무래도 그거를 본 경험 없이는 안 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생각보다 어떻게 보면 꽤 거칠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샌님 이미지로들 보시는데 저는 굉장히 어렸을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말이죠. 그때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한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상황들, 그런 것들이 저를 분명히 뭔가 음악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고요. 한편으로 거기에서 좀 그렇게 극한의 우울함에서 다른 즐거움 그거는 또 돌이켜보면 제가 유일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거기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제일 재미있게 놀려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밝으려면 저만큼 밝아야 하고 어두우려면 정말 저만큼 어두워야 제 성에 차는 그런 사람이 됐는데, 이게 한 가지 예술적으로만 생각하면 저도 제 인생 저도 인제 올해 오십이 되었는데요. 뭐 다시 태어나면 그렇게 살고 싶다. 이런 소리는 안 해요. 하지만 저와 아주 가까운 누군가가 저와 똑같이 살라고 하면 그것은 제발 말리고 싶은 만큼의 어떤 그런 감정적인 고통이라고 얘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거는 작가마다 다 그게 색깔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아무튼 지금 질문해주셨던 그 밝음과 어두움은 밝음도 제가 경험했던 밝음이고, 어두움은 사실은 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거기서 까지는 제가 아직 실력이 안 되서 표현하지 못 하는 게 있을만한 그런 어두움도 동시에 늘 있다는 걸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진행자 :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천국과 지옥이 있다라고 하는데 아마도 삶에서의 그러한 경험들을 오롯이, 그 음악 속에다 담아내셨기 때문에 대중들은 윤상이라는 이름으로서 다양한 세계의 음악들을 즐기게 된, 조금은 좀 아이러니 한, 그런 또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Q. 편곡할 때 악기 구성 및 새로운 음색 작업 등 특별한 작업 방법이 있다면?
윤상 : 아마 프로듀서들마다 다 방법이 다를 거예요. 저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리듬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 의뢰받고 있는 곡들은 거의 솔로가수들이 아니라 팀 음악이에요.
그래서 이게 여러분 제가 원래 오늘 준비했던 얘기 중에 하난데 아마 용감한 형제는 그 시절을 기억하실 거예요. 지금은 프로듀서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 악기들의 톤, 드럼 사운드라든지, 이런 것이 가능하면 여러분들이 손쉽게 구하실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소리, 여러분들이 3일 안에는 구합니다. 아는 오빠, 누나한테 전화해서라도 말이죠.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이젠 그렇게 마법 같은 톤은 존재 안 해요. 하지만 제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이때는 킥소리, 스네어소리, 기타 사운드 이런 모든 것들은 다 그 프로듀서의 무기였어요. 절대 안 알려줍니다. 이 소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말이죠. 그랬기 때문에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도 그 비밀을 풀기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 노하우들은 있죠. 그만큼 프로듀서들에게 자기만의 사운드, 어떤 식으로 리듬을 프로그래밍을 해야 이게 훨씬 사람을 더 움직일 수 있는가 어떤 드럼톤, 심지어 예전에 베이비페이스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는 자기음악의 가장 큰 성공요소는 자기 스네어(snare) 톤이다라고 인터뷰를 한 적도 있어요. 그만큼 그건 이제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건데, 그럼 그 사람의 스네어(snare)를 카피만 하면 나도 그 사람 같은 곡을 쓸 수 있다! 즉, 여러분 음표, 악보가 더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는 녹음되어 있는 그 소스! 거기에서 내가 이 톤을 활용할 수 있는가가 작곡가들의 어떤 성공의 열쇠로 바뀌어습니다. 1990년대에 그래서 그때는 정말 자기가 사용하는 톤들에 대해서 정말 저도 사랑하는 극히 후배 몇 하고만 나눠오고 또 그 후배들과 또 톤을 나누고 또 후배들의 톤을 받기도 하고 이런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말 그 모든 무기들이 정말 이렇게 암시장에 헐값에 나와 있는 것들처럼 여러분 원자탄도 살 수 있어요. 음악으로 치면 말이죠. 심지어 어둠의 세계에서 카피로도 ‘마음에 들면 사세요’라고 심지어 크래커들이 그런 문구까지 적어 놓습니다. ‘써보고 마음에 들면 꼭 정품을 사라’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정말 감각과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내공과 내 감각과 센스를 믿는다. 그러면은 그 톤을 만들어서 찾아가는 것부터가 작곡의 시작이 되는 시대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얼마나 행복한 시대를 살고 계십니까. 자 이게 톤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작곡가의 일화는 아닙니다만 예전에 재즈연주자가 우리나라에 내한공한 했을 때 잠깐 본적이 있는데 다른 악기는 다 이렇게 들고 오려면 무겁잖아요. 이제 자기는 전 세계 다닐 때 심벌만 가지고 다닌대요. 다른 북들은 전 세계 어디나 톤을 낼 수 있는데 심벌은 왜 가지고 다니냐?라고 했더니 그걸 자기가 갈아가지고요, 자기 톤이 딱 있더라고요. 그 기성품으로 나온 걸 갈아서 그 두께를 조절해가지고 자기만의 톤을 가지고 연주하는걸 보면서 아, 연주자라든지 ‘작곡가들에게 자기만의 색깔, 톤 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라고 생각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걸 다 구하실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좀 더 부지런함을 통해서 아주 멋진 작곡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지금 얘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Q. 지금과 다른 음악적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무엇이 있는지?
윤상 : 글쎄요, 저는 하고 싶은 장르에 대한 도전 같은 거는 계속 그냥 그걸 도전이라고 생각 안하고 삶처럼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주변에서 더 힘들어 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너무 그때마다 제 생각대로 “나 이번에는 되게 좀 깊은 일렉트로니카를 하고 싶은데...” 그러면 -1 “아직도 사람들은 발라드 가수 윤상인줄 알고 네 앨범을 집어 들었다가 -2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러느냐” 이런 소리도 들었을 만큼, 그래서 저는 장르적으로는 뭐 특별히 더 도전하고 싶거나 한건 없고요. 단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뭐 그것이 아이돌 팝이 됐던, 어떤 형태의 음악이 됐던 이제는 최소한 유럽 정도에서는 자연으로 뜨는 곡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노래라는 거는 홍보해서 뜨면 매력 없잖아요. “그 노래 들어봤니? 좋아”, “아 그거 아는구나” 저는 이런 식으로 유럽친구들도 한국인들의 음악에 귀를 홀릴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미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미 예전에 했던 거기 때문에 금방 질려했거든요. 근데 우리는 그걸 좀 늦게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아직 소화할게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안 쓰는 문화라 하더라도 이건 좀 뭐 뒷설명이 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제 꿈은 그래서 단지 우리의 그룹들, 아이돌들만 유명한 게 아니라 이들이 만드는 곡 자체가 물론 그런 뭐 <노바디>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큰 반향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말 좀 뭔가 그 이상 이라는 것은 더 큰 히트곡 이라는 게 아니라 이제 “이것도 한국노래였어?” 뭐 이러한 것들이죠. 좀 그런 시대가 와야 진정한 K-pop이 사람이 매력있는 게 아니라 K-pop의 팝도 매력이 있다라는 거에 충분한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하는 게 나이 먹은 프로듀서로서의 어떤 숙제라고 생각하고요. 요즘 몇 년 사이에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아직까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이들 등장하는 모습들 저는 가까이서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의 우리가 뭐 단지 어떤 아이돌 문화가 최고야 이런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서 자체가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자연스럽게 Top을 갖게 되는 어떤 그런 순간을 기대를 해보게 되고요. 그런 노력만이 앞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행자 : 아마도 여러분들이 지금 이제 음악산업에 뛰어들어서 작곡과 프로듀싱을 하시게 된다라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굉장히 좋은 시기를 만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인터넷으로 이어져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제 직접 구매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예전처럼 그 지역에 직배사들이 음반을 발매해줘야지만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음반을 샀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시장을 상대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사실 음반회사에서 8년을 근무를 했었는데 90년대에 우리나라 음반시장이요 전 세계에서 8위에서 6위권에서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시장이었어요. 그래서 웬만큼 유럽에서 아티스트들이 오면 고개도 안 숙였어요. 노르웨이나 덴마크에서 다 뭐 몇주 간 1위를 했다고 그러는데 팔아봐야 10만장 인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음반, 음악 프로그램이 이렇게 데리고 가면 한국가수들 보면서 “저 가수 누구냐?”, “유명한 가수다”, “얼마정도 나가냐?”, “내면 한 100만장씩 나간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유럽아티스트들이 한국에 굉장히 리스펙트를 갖고 시키는 대로 다 따라왔던 그런 기억을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Q. 침체된 밴드 그룹이 성장할 수 있도록 프로듀서 또는 작곡가 입장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윤상 : 너무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지금 가장 저희 사무실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에요. 왜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훌륭한 밴드가 많은데 해외에서 관객이 미어터지는 밴드는 안 나오는 걸까? 엄청 고민했고요. 저의 회사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앨범은 하나도 몰라도 라이브하면은 이 팀이다’라고 생각되는 팀들을 제가 두 달 전부터 조사를 시키고 열심히 지금 리서치를 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는 우리나라 인디밴드의 가장 큰 장벽은 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어요. 뭔 이야기냐하면 주류 사운드에 들어갈 수 있을만한 기술이 없어요.
자기들이 라이브를 하는 음악이 멋있으니까 음악은 라이브를 보러 와. 우리 음악은 라이브야. 말 되죠? 라이브에서만 들어야 돼요. 집에선 못 들어요. 그래서 밴드가 못 뜹니다. 답답해요.
제발 100번, 2000번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녹음을 해야 라이브 밴드가 전 세계 투어를 돌죠.
비틀즈가 라이브만 잘하는 거 아니잖아요. 이 친구들 라이브에는 목숨 걸어요. 하루 13시간, 14시간씩 연습해요. 팀 사운드. 근데 어떻게 녹음을 시켜보려 그러면 말을 아직은 들을 상황이 안 되어 있어요. 너무 성질들이 나있어서, 한 마디로 남의 얘기 듣기 싫은 만큼 뭔가 탈출할 생각만 하는 거죠. 이걸 좀 누군가가 니들이 조금 말을 듣고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해야 스튜디오 테크닉과 애티튜드를 갖게 하는가? 저는 그게 가장 급선무라고 봐요. 좋은 싱글이 필요없다 라고 하는 아이들한테 좋은 싱글을 만들게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인디밴드라도 슈퍼 싱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대한민국 인디에서도 충분히 콜드플레이 이상의 팀이 나오지 않을까? 저는 그런 꿈을 꾸는데요. 제발 밴드 여러분 연주만 잘해서 되는 거 아닙니다. 녹음 잘 해야 돼요. 프로듀서 필요합니다.
진행자 : 근데 이거는 조금 정리해도 볼 필요도 있을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인기 없이 자기들의 음악을 한다라고 ‘인디’ 이렇게 쉽게 붙이는데, 사실 인디밴드한테서 온 인디란 단어는 자기들 고집대로 음악을 하는 대신 소수의 팬들로서, 자기들의 음악적인 활동이 계속 영위될 수 있어야 인디밴드라고 그래요. 인디영화도 마찬가지고 독립영화라는건 뭐냐면 제작비를 조금 들이는 대신 조금만 벌어도 또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자기 나름의 산업구조를 가져야 그것을 원래는 인디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조금 바뀌어서 사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또 하나는 분명한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은데요.-1 천하의 비틀즈도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나고 나서 세계적인 그룹이 됐어요. 조지 마틴이 비틀즈를 처음 받아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한 행동이 뭐냐면 피트 베스트(Pete Best)라는 드러머를 퇴출 시켜 버렸어요. “저 연주 실력으론 비틀즈라는 팀을 히트시킬 수 없다” 그 사람을 자른 뒤에 링고 스타(Ringo Starr)를 영입해서 비틀즈를 완성체로 세계시장에 데리고 나간 거죠. 또한 우리야 뭐 펑크 록의 어떤 얼터너티브의 대부라고 이야기하는 너바나 같은 경우도 제가 이름이 아마 너무 오래 되어서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치 빅(Butch Vig)인가 라고하는 아주 유명한 프로듀서에 의해서 음반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거죠.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 윤상씨와 용감한 형제가 얘기해주신 부분의 핵심은 아무리 라이브를 잘하는 난다 긴다하는 인디밴드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스튜디오에서 명 프로듀서가 있어야 되고 그것을 통해 완성도를 올려야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거 같습니다.
윤상 : 너무 옳으신 말씀이고. 시간 때문에 그래도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 같아서 제가 30초만 더 붙이면요. 지금 힙합 얘기했잖아요.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 밴드음악도 우리 사회가 바뀌는 만큼 분명히 그럴듯한 밴드가 나온다 라고 저는 기대를 하고 있는 이유가 소통의 부재였어요.
지금 힙합은 왜 이렇게 시장이 크냐면 지금 얘기한 말 중에 존중, 리스펙이란 단어가 훌륭한 연주자가 있으면 아무런 얘기없이 자기가 가서 리스펙을 합니다. 그 사람의 어떤 연주자들한테도요. 힙합 팀 라이브 요즘에 지코, 크러쉬 라이브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아티스트들 같지가 않아요. 이거는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음악적인 깊이가 대단해선가? 아니요. 깊이도 대단하겠지만 서로를 바라볼 때 정말 벽이 없이 봐요. 장점만을 받아들일 것만 오해할거 필요 없고, 그만큼 어떤 힙합이라는 안에서 자기들이 자유를 느끼는 방법을 배운 거 같아요. 하지만 인디밴드라 함은 태생적으로 밴드는 남들하고 달라야 하잖아요. 다른 밴드 다섯이 있으면 전쟁이 안 나는 게 다행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밴드들에 상처 안 받고 이들의 자신들의 자존심을 영위하면서 음악 할 수 있는 상황이 아직은 안 되는 거죠. 그러려면 뭔가 그쪽에 열린 기획자들도 있어야할 것이고, 밴드 멤버들 스스로가 좋은 음악을 함께 같이 공유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될 거 같아요. 점점.
진행자 : 네.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쉽습니다. 콘텐츠진흥원 주관의 콘텐츠 인사이트 ‘최고가 최고를 만나다’ 윤상씨와 함께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을 또 두 분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또 여러분들게 아주 친절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진행자 : 끝으로 미래의 음악 작곡가이자 또 프로듀서에게 많은 분들에게 두 분의 어떤 끝인사를 좀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윤상 : 이렇게 관심이 있는 분들 앞에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하다보니까 저도 좀 오늘 마음이 시원해지는 거 같아요. 분명히 대한민국의 문화는 앞으로가 더 기대할게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아까 제가 인터뷰할 때도 그런 얘기 했는데 보통 저희는 아직도 공자님 말씀을 너무 믿고 ‘4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라고 생각하는데요. 저 50인데 아직 하늘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는 일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굉장히 지금 여러 정치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일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고 문화는 결국 돈보다 그런 마음에서 피어나는거잖아요. 그래서 모두 파이팅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진행자 : 예술 평론가인 월터 페이튼이 그런 얘길했다라고 해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그것은 형체가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음악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최고의 예술인 음악을 하고계시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보셨으면 어떨까하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태훈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작곡가나 프로듀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의 질문에 대해 윤상 작곡가 겸 프로튜서가 답변하는 시간을 통해 음악 작곡 등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여 해결 Point를 제시합니다.
02. 강사 소개
윤상 (작곡가 겸 프로듀서)
03. 강사 이력
- <보랏빛 향기>, <입영열차>, <돌이킬 수 없는>, <나만 몰랐던 이야기> 등 작곡 - 제1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작곡가상 수상 -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