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 안녕하세요.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입니다. <한눈에 살펴보는 우리 뮤지컬 이야기>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뮤지컬의 시작과 여러 가지 개념에 대한 설명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뮤지컬이 정말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찾기도 하고요, 그 안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 누리기도 하죠. 공연이 시작하기 5분이나 10분 전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는지 놀랄 만큼 그 인기가 대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뮤지컬이 어떤 예술 장르인지, 뮤지컬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또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오페라와 뮤지컬을 혼동하거나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대화를 하다가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면 그 꼭지 이름을 뮤지컬이라 부르는 오해를 만들기도 합니다. 뮤지컬은 노래하는 연극이다,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뮤지컬은 오페라하고도 다르고요, 연극과도 다릅니다. 무대를 이용한다고 해서 연극과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를 같은 장르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마치 영상을 이용한다고 해서 광고와 드라마, 영화를 한 바구니에 넣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겠죠. 굳이 말한다면, 뮤지컬이 만들어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오페라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페라와 뮤지컬,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혼동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하지만 태생적 배경을 보면 두 장르도 확연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형식 모두 음악으로 극이 진행된다,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는 것은 같지만 그 태생적 배경은 자못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게 된 것 같습니다.
오페라는 주로 중세 봉건시대 때에 인기를 누렸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재정적 후원을 했던 것은 그 당시 소수의 지배계급들, 왕이나 귀족 같은 사람들이었고요. 돈을 내는 사람들이 그 소수의 지배계급들이었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음악극의 내용들도 대부분 귀족들의 사랑, 혹은 왕족의 비극적 운명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면, 뮤지컬은 산업혁명 이후에 등장합니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기계의 혁명으로 대변될 수 있죠. 많은 부분에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목격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도시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에서 작은 농사를 짓거나 혹은 가내수공업 같은 것에 의존했었던 대중들, 이제는 도시로 몰려들었고요,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생산물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도시 안에는 노동자들의 수도 늘어나게 됐죠.
지금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혹은 영화 같은 대중매체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처음 서구사회에 도시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1800년대 말에는 이런 매스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라디오가 발명된 것은 1920년대 이후에 일이고요, 텔레비전이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이미 서구사회에 도시가 등장한 것은 1800년대 말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시작된 것이 돈을 내고 무대를 보는 상업적 성격의 공연들이었습니다.
서구 사회 뮤직홀의 등장과 인기
전문가 : 하루 종일 공장에서 혹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근로자들, 하루의 피로를 덜어줄 여가 거리, 오락거리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극장식당 형식의 뮤직홀이라는 공간들이었어요. 이곳을 찾으면 밥을 먹으면서 음악도 즐기고 여러 가지 쇼를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뮤직홀은 특히 산업 혁명의 주역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영국에서도 런던을 중심으로 약 4~50개가 흥행을 할 정도로 매일 밤 사람들로 가득가득 메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는 역사 기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공연장, 생각해보시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테이블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한쪽 켠 무대에서 가수가 나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또 마술사가 나와서 볼거리를 보여주는가 하면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 만담 거리를 들려주기도 했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볼거리가 시원찮으면 야유가 빗발쳤죠. 역사적인 기록들을 찾아보니까 그 당시 심지어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무대로 던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대를 찾는 애호가들은 준비성이 철저한 것 같습니다.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들고 저녁 공연을 보러 무대로 찾아간 것이었죠.
음식을 먹으면서 보던 문화는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대를 바라보는 오늘날의 무대와 객석으로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음식을 먹던 문화는 공연장 뒤쪽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그래서 지금도 영미권의 오래된 도시, 예를 들어서 런던이나 뉴욕 같은 공간을 찾아가 보시면요, 공연장 맨 뒤에 음식을 파는 일종의 키오스크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곳들도 만나보실 수가 있습니다.
즉, 극장식당에서 오늘날의 공연장으로 탈바꿈 되게 되는 중간 형태의 공연장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죠.
물론 더 시간이 흐르면 공연장의 로비로까지 이 음식을 먹는 문화는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연장이라는 곳을 찾아가시면 극장 로비에 간단한 다과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원래 처음은 바로 그 극장식당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이런 모습들이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거죠. 흥미로운 것은 그래서 영미권의 공연장을 찾아가시면 자리에 들어가실 때 간단한 음료 한잔 정도는 갖고 들어가셔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음식물이나 음료수 반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우리나라의 뮤지컬 공연과는 좀 차이가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죠. 밖에서 사 온 음료들은 안 되고요, 공연장 안에서 구입한 음료들은 얼마든지 자리에 가지고 들어가서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1막과 2막 중간 사이에 있는 인터미션이라는 중간 휴식시간, 보통 15~2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기 마련인데요. 그때는 영국에서도 런던의 웨스트엔드 극장가의 경우 아이스크림을 객석 통로에서 팔기도 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아이스크림까지도 즐길 수 있는, 마치 우리가 드라마를 보듯이 대중문화 속의 여러 가지 재미난 콘텐츠를 보듯이 뮤지컬도 즐길 수 있다, 역사적 전통은 거기에서 비롯됐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사적 공연장르들이 뮤지컬의 형성에 미친 영향
전문가 :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데에 영향을 줬던 전사적 성격의 대중극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볼거리를 옴니버스식 구조로 보여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보드빌이나 흑인들을 희화화해 우스꽝스럽거나 유쾌한 존재로만 묘사했던 민스트럴 쇼, 또 여성들을 상품화해 무대에 등장시켰었던 벌레스크, 미국의 경우에는 미시시피강을 돌아다니면서 유랑극단을 운영했던 쇼보트, 또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했던, 그래서 무대에 늘 계단이 있고 전식이라고 해서 전구들이 화려한 조명을 비춰줬었던 엑스트라바겐자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것들이 바로 이런 전사적 성격의 공연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뮤지컬은 그래서 노래하는 연극이 아닌 보드빌처럼 여러 볼거리가 등장하고, 벌레스크처럼 멋진 선남선녀가 무대에 나오며, 민스트럴 쇼처럼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상업 무대가 바로 뮤지컬이다,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한국 뮤지컬의 경우, 연극인들에 의해 도입되는 역사적 맥락 경험
전문가 : 그럼 왜 우리나라에서는 연극의 한 장르로 뮤지컬을 인식하게 됐을까요? 그건 우리나라에 뮤지컬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연극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됐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연극 무대들은 보다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깊이를 추구하게 됐습니다.
대중들로부터 좀 괴리되는 현상도 그래서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철학적인 심미적 깊이는 더해갔지만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기에는 좀 힘든 전문적인 영역으로 발전을 하게 됐습니다. 실험극들이 등장을 했고요, 심오한 주제와 실험들이 무대에 올려졌지만, 덕분에 무대는 더욱 일반 대중이 아닌 연극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의 문화, 소수의 애호가 문화로 변질되게 됐습니다.
몇몇 연극인들은 그래서 보다 대중화된 공연예술 장르의 소개를 통해 관객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끌어모을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요. 그래서 선택된 장르가 바로 신극 형태로 뮤지컬이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때 말하는 신극은 새로운 연극이란 뜻이었었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를 전후로 해서 큰 인기를 누렸던 서양의 뮤지컬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태자의 첫사랑>이나 <7인의 신부> 같은 작품들이었죠. 영화 상영관에서 막을 올리면서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또, 미 8군을 드나들었던 음악가들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마침 이 미 8군 안에서 미국이나 혹은 유럽에서 위문공연들이 우리나라를 많이 찾았었고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앞서갔었던 음악가들, 즉 미 8군에 출입을 했었던 음악가들이 뮤지컬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헬로 달리>같은 작품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무대에는 그래서 다시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집중됐고요,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뮤지컬이 노래하는 연극이라는 존재로 각인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뮤지컬은 음악극이고, 그래서 연극보다는 오페라에서 파생된 장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뮤지컬의 할아버지는 연극이 아닌 오페라였던 셈이죠. 현대 음악, 혹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로 확장된 오페라가 바로 뮤지컬이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오페라와 뮤지컬은 어떻게 다를까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습니다. 마이크를 쓰냐, 쓰지 않느냐로 구분하기도 하고요, 공연 기간이 한정적이냐 아니면 롱런, 혹은 오픈런이라고 해서 길게 공연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눠지기도 합니다. 음악이 있는 이야기냐 아니면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냐 이렇게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음악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에 방점이 있는 것은 뮤지컬이고,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음악에 더 큰 방점이 있는 것은 오페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페라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는 흔히 오페라 가수라고 부르지만, 뮤지컬 무대에 서는 예술가는 뮤지컬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을 쓰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뮤지컬의 시작과 개념에 대해서 설명드렸습니다. 뮤지컬,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아마 이 강연을 통해서 만나보시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그럼 우리나라 뮤지컬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도입이 됐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우리나라 뮤지컬의 등장 배경, 서구 사회 뮤직홀의 등장 등 뮤지컬의 시작과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왜 뮤지컬을 연극의 한 장르로 인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02. 강사 소개
원종원 (뮤지컬평론가)
03. 강사 이력
- 순천향대학교 교수 - 방송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 진행 - 공연 <원종원의 강연 콘서트-뮤지컬 스토퍼스> 진행
- 주크박스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2013) -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동아시아, 2006) -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세상의창,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