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트랜스미디어 전략. <오버워치> 캐릭터 중심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에서 문화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 이동은입니다.
최근 스토리텔링 기술은 서사 중심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데이터베이스 패러다임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과 만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오버워치>의 메타 이야기적이고 캐릭터 중심적인 IP 활용 사례를 통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모든 문서와 이미지, 그리고 영상물들을 데이터 형식으로 전환하여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합니다. 데이터들의 집합체인 데이터베이스는 순서와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유 가능한 공공재화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데이터의 공공재화적 특성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데이터들은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꺼낼 수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수정할 수 있으며, 수정한 이본과 원본을 모두 독자적으로 다시 저장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립적인 데이터들이 가득 차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디지털 시대의 작가, 예술가, 창작자들에게 무한히 사용 가능한 창작의 재료들을 제공하는 거대한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데이터베이스 패러다임은 스토리텔링 모델을 서사 중심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합니다. 전통적으로 캐릭터는 그가 속한 이야기 속에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캐릭터는 자신이 속해 있는 이야기 틀을 벗어나면 가지고 있던 기능을 잃어버리고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 까닭은 캐릭터가 허구적인 세계인 디에게시스적 층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캐릭터들은 데이터베이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제 캐릭터들은 특정한 하나의 스토리에 종속되지 않고 탄생이 기반이 되었던 원전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가지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사건을 경험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마블의 슈퍼 영웅들이 각자의 세계관 안에서 존재하다가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트랜스미디어적 양상을 떠올리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작가나 예술가 등의 창작자들은 데이터 생성자라고까지 불리우며 데이터를 선별하고 모아서 새롭게 구성하는 식의 창작 방법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대중들 역시 캐릭터를 최소 단위로 삼아 이야기에 관련된 상상을 전개할 수 있는 새로운 창작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새로운 창작 방법론은 게임에서는 어떻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게임 <오버워치>를 통해 게임 IP를 활용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고 배급하는 다중사용자 1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오버워치'는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에 평화를 되찾기 위해 결성된 특수부대의 지칭하는 것으로 플레이어는 다양한 영웅 중 하나를 선택해 '오버워치'의 일원이 되어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오버워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대에 적합한 콘텐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오버워치>는 다중의 미디어를 활용하여 스토리 세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FPS게임은 스토리보다는 슈팅과 액션에 집중하여 디자인되어 왔습니다. 쏘고 맞추고 피하면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 FPS 장르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는지, 누구와 싸워 이겨야 하는지, 그리고 전장 공간 구성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어들에게 체감되는 스토리들은 미비한 수준입니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FPS장르는 특히 이유 없는 폭력성이 난무하는 장르로 매도되고 있기도 합니다. <오버워치> 역시 화물을 호위하거나 거점을 점령, 혹은 쟁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6:6 전투를 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에는 특별한 스토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맵의 경로를 잘 파악하고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승리를 거머쥡니다.
그러나 <오버워치>는 전장의 전투를 시스템화 하는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체인 옴닉의 갈등으로 다목적 연합군인 '오버워치'가 창설되고 여러 영웅들이 평화를 지켜냈지만, 그들 사이에 다시 내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오버워치가 공식 해체되기까지의 역사와 오버워치 세계관 속에서 영웅들이 각자 어떤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지를 다수의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만화 등을 통해 스토리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특징처럼 다매체를 통해 확장되고 있는 각각의 스토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확장된 세계의 스토리들을 알고 있다면 게임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서 그 경험의 질과 폭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것은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버워치>의 두 번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은 바로 미디어를 다중으로 활용하여 스토리를 확장하면서 동시에 미디어별로 스토리를 파편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스토리를 미디어별로 파편화시키는 중심이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합니다.
게임 출시를 전후로 하여 온라인에서 공개된 <소집>, <심장>, <용>, <영웅>, 그리고 <마지막 바스티온>의 5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각각 대표적인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집중합니다. <소집>은 윈스턴을, <심장>은 위도우 메이커와 트레이서를, <용>은 한조와 겐지를, <영웅>은 솔져76과 알레한드라를, 그리고 <마지막 바스티온>은 로봇이지만 감정이 존재하는 바스티온을 소개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나 배경이야기>, <솔져76 배경이야기>, <범죄와의 전쟁>등의 단편 영상과 <정켄슈타인>, <맥크리>, <드래곤 슬레이어> 등 다수의 단편 만화로 <오버워치> 영웅들의 스토리를 보강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버워치>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는 '오버워치'가 활약하던 시대의 기록들이 담겨진 박물관을 방문한 두 형제의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두 형제가 오버워치의 영웅들을 흠모하면서 박물관을 구경합니다. 그 때 갑자기 리퍼와 위도우 메이커가 나타나 박물관 중앙에 전시된 툼피스트의 '건틀릿'을 탈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윈스턴과 트레이서에 의해 실패하고 말지요. 트레이서는 '건틀릿'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서 두 형제에게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사실 이 메시지는 두 형제로 대변되는 플레이어를 향한 것입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오버워치 세계의 영웅이 되라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버워치>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는 앞으로 게임을 하게 될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파편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버워치>의 영웅들은 오리지널 세계관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다양한 미디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창작 환경을 아즈마 히로키는 모더니즘 시대를 지배하던 큰 이야기가 쇠퇴하고 미시적 수준의 작은 이야기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컬트나 음모론과 같은 음지에서 양산되었던 소재들이 어떤 공유화의 압력도 없이 자유롭게 표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른바 오타쿠를 비롯한 다양한 소비자들의 기호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정되고 맞춤화된 이야기들이 데이터베이스 시대에 창작되고 소비되는 것입니다. 데이터 소비에 의한 작은 이야기들은 이야기 속 캐릭터의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캐릭터들은 원전이 되는 게임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미디어를 만나 유통되고 소비되는 캐릭터 중심 스토리텔링 현상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버워치>가 보여주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플레이어들이 캐릭터를 최소 단위로 삼아 이야기에 관련된 상상을 전개하고 제2, 제3의 창작물을 제작하면서 개발사와 영향을 주고받는 데 있습니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인 D.Va(디바), 송하나는 대한민국 부산 출신의 캐릭터로 전직 <스타크래프트 6>의 프로게이머였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16세에 <스타크래프트 6> 세계 랭킹 1위, 3년간 무패행진, 그리고 종족 무작위 4연속 세계 챔피언이라는 엄청난 기록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아 '오버워치'의 일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오버워치>가 자사의 또 다른 IP인 <스타크래프트>를 재매개하여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만, 더 매력적인 것은 디바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그녀의 캐릭터를 '오버워치' 세계에서 분리시켜 그럴 듯한 설정을 추가하면서 제2, 제3의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설정상 송하나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점과 한국 보이스를 맡은 성우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이 더해져 다수의 팬아트에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송하나를 스토리텔링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 송하나가 최연소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설정 때문에 실제 게임 덕후들의 상징적 스낵이라고 하는 도리토스와 마운틴듀를 함께 그리는 이미지들이 양산되기도 하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팬들의 2차 창작물들을 블리자드 사가 원작에 반영했다는 데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최첨단 로봇에 탑승해서 도리토스와 마운틴 듀를 먹고 마시면서 게임을 하는 송하나의 모습을 캐릭터 감정표현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이른바 정전 다시 쓰기가 원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와 개발자 사이에서 새롭게 업데이트 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추리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개발자들은 게임 내 공간에 각종 아이템들을 설치하거나 배경에 수수께끼를 숨겨 놓았습니다. 오버워치의 공식 영상, 이벤트 영상,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간 이미지나 스크린 샷의 일부를 통해 신규 영웅에 대한 힌트들을 숨겨 놓았고, 플레이어들은 전문 해커 이상의 수준으로 비밀을 찾아 개발자들의 해답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플레이어들이 개발자에게 문제를 내고 개발자와 새로운 게임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트랜스미디어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오버워치>의 메타 이야기적이고 캐릭터 중심적인 IP 활용 사례를 통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