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템이라는 게 계획적으로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촬영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 아이템을 만져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우연히 제 앞에 그 아이템이 와 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저 뿐만 아니고 다른 연출하는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그 아이템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사실은 그건 판단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걸 판단해내는 사람이 있으면 만들 때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러겠지만 그렇지 못한 걸 보면 항상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행해 나가는 것 같고, 그 아이템도 결국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 앞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저는 그게 나머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거 같아요. 아이템이 더 중요하다. 기획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은 게 아이템이 그 자체로만 보면 굉장히 이쁘고 잘 나올 것 같지만 기획을 해서 이제 들어가서 취재를 해보고 그렇게 하면 의외로 아닌 경우도 있고, 또 반대의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걸 딱히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아이템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가 기획이라면 그 각도에 따라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아이템이 굉장히 보석처럼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굉장히 좋아 보이고 빛나 보이던 아이템인데 막상 들어가서 살펴보면 조금 TV 다큐로 만들기에는 힘든 아이템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죠. 그래서 양분해서 나누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저희 회사에서는 다큐프라임이라는 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 대표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는데 그 다큐프라임을 제작하는 방식을 보면 저희는 회사 내에서 공모제를 해요. 기획 안을 PD가 들고 와서 심사위원들 앞에 내부 PD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 앞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거기서 통과가 되면 거기서 제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근데 들고 오는 대부분의 아이템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죠. 다큐프라임을 보면 여러 다방면으로 주제가 펼쳐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PD들이 자기가 원하는 거를 가져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연출을 하게 되는데
그 아이템이라는 게 자기가 원했지만 사실은 그걸 면면이 들여다보기는 힘들거든요. 기획을 하고 연출을 직접 들어가기 전에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피상적인 겉모습만 보고 할 수도 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자기가 생각한 것 보다 나는 이 아이템이 좀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좀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는데 들어가 보니 막상 재미있고 이런 부분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PD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템이라는 거는 저기 멀리 있는 별 같은 거 있는 줄은 알지만 예쁜 건 알지만 거기에 가봐야 거기가 어떤 별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템만 보고 그럴 수는 있죠. 예를 들면 KBS에서 예전에 제작한 차마고도 이런 다큐멘터리는 저는 그 기획 안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템만 들으면 누가 와서 차마고도에 대한 설명을 1분 정도만 해도 거기에 담긴 내용이라든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떠오르는 풍경이라든가. 거기에 출현한 여러 인물들의 절박함이라든가 이런 게 이제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런 아이템은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에 굉장히 좋은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좋은 아이템인 것 같아요. PD들은 이제 아이템을 찾으러 사실은 서점에 많이 가요. 저희 EBS PD들은 서점이 TV를 보는 시청자보다는 좀 그런 쪽에 관심이 더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서점에서 이슈가 되면 빠르게는 몇 달 뒤에 혹은 몇 년 뒤에 TV에서도 그런 붐이 형성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게(있다.)
수학 다큐멘터리를 왜 하게 됐냐 이렇게 하면 결국 부장님이 시키셔서. 저희 부장님이 그 때.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어떤 대학교의 수학자가 하는 강의를 들으셨나 봐요. 수학이 그냥 학교에서 문제를 풀고 그런 과목에 그친 게 아니고, 인류가 문명을 세워서 이때까지 오면서 굉장히 깊은 설계도 역할을 해왔다는 내용을 풀어서 하시는 강의였는데, 그 강의를 감명 깊게 들으시고, 본인께서 이제 수학 다큐멘터리를 하시겠다고 오랫동안 기획을 하셨는데 그 분이 부장이 되셔가지고 저희 회사는 부장은 연출을 하지 않거든요. 제가 그때 그 부서의 부원으로 있었는데 부장님이 저보고 수학 다큐를 하라고 권유를 하셨는데 저는 수학은 절대 못한다. 이렇게 거부 표시를 했죠. 권유를 하셨으니까 지시면 해야 됐겠지만. 그렇게 3, 4차례 권유를 하시다가 권유를 넘어서서 지시처럼 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수학을 처음 다큐를 하게 됐어요.
굉장히 당황스럽죠. 수학은 저는 학교 다닐 때 점수도 낮았고, 수학이 도대체 어떤 과목인지도 몰랐죠. 그런데 이제 수학 다큐를 하게 되어서 수학자를 만나고 수학책을 보고 이렇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알고 있던 수학에 대한 시선이 좀 왜곡됐다는 걸 그 때 알게 됐어요. 아 이게 수학이 안에 분명히 재미있는 게 들어있구나. 그 진행 과정에서 수학의 묘미를 조금 느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제 촬영하고 이럴 때는 신이 나는 상태였죠.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가 스타워즈처럼 굉장히 장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게 6부작 중에 4부를 먼저하고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 나오고 기획한 건 당연히 아니고요. 처음에 수학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문명과 수학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수학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였거든요. 그 때 제작할 때는 수학이라는 거를 사람들이 너무 싫어하고 싫어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쨌든 시청자들과의 친해질 수 있는 접점을 찾자 이렇게 해서 굉장히 좀 쉬운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거든요.
그 쉬운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 중에 하나로 역사를 따라 올라가는 방법을 취했고, 다큐멘터리가 다 제작이 되고 난 뒤에, 3년 뒤에 이제 다시 넘버스라는 수학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는데 그 때는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죠. 앞에 했던 문명과 수학과 연결되는 부분은 사실은 없고, 넘버스는 문명과 수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는 TV로 시청하기에 불편한 부분들이 많아요. 굉장히 고급 수학이 많이 나오고, 그런데 저희는 그 수학에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려면 좀 더 깊이 있는 수학 이야기를 해야만 그게 좀 드러나겠다 해서 넘버스를 기획하고 제작하게 됐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문명과 수학은 시청자와의 수학을 좀 친밀하게 만들자는 기획 의도가 있었던 것 같고, 넘버스는 제가, 연출자가 좀 더 욕심을 내서 수학의 좀 깊은 맛을 시청자들에게 전달 해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기획 된 것 같아요.
그.. 일단 수학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EBS니까 교육방송이니까 조금 특수한 방송이고 해서 그걸 할 수 있는 당위성 같은 게 마련이 됐는데 수학 같은 경우는 계속 연작으로 만들어낼 소재가 굉장히 많죠. 일단 당연히 역사도 깊고, 많은 수학자들이 좋은 에피소드가 많고, 그리고 수학이 가지는 소구력이 있죠. 왜냐하면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있으니까 우리가 중 고등학생을 이렇게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계시니까 수학 다큐하면 보자 이렇게 되는 게 있죠. 그런데 이제 연출자로서 좀 경계하는 부분은 같은 소재를 제작을 계속 해나가면 첫 번째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같은 소재니까 같은 방식으로 연출을 자기도 모르게 하려는 과정 같은 게 있어서 했던 거를 또 하게 되는 방법적으로 또 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두 번째는 일반 시청자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만든 수학 다큐도 그런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도 있어요. 좀 더 일반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좀 더 쉽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죠. 반면에 연작, 그런 걸 잘 지켜나가는 PD들은 연작을 하면서 시청자와의 관계도 잘 유지해 나가고 프로그램도 점점 더 깊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PD들도 많죠. 역사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도 그렇고, 자연다큐멘터리 만드는 PD들도 많은 PD분들이 본인이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한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폭넓어지고 깊어지니까 그게 담겨서 프로그램으로 되면 훨씬 더 좋은 프로그램 처음 그 소재에 접해서 연출한 PD는 다가갈 수 없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깊이가 담긴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연작을 하는 게 좋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수학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 자체를 모르니까 당연히 먼저 생각 드는 거는 수학자를 만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되는데 수학자를 만나기 전에 조건이 있죠. 가서 이제 수학자를 만나서 대부분 수학 교수님들이신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는 그분이 쉽게 자기용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 지식은 제가 가져가야 되잖아요. 그게 예의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했던 방법은 일단 서점에 가서 서가에 꽂혀있는 수학 대중 서적을 다 뽑아왔죠. 수학 대중서적도 많거든요. 한 200권정도 될 거에요. 가면 그걸 작가하고 앉아서 작가도 물론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죠. 앉아서 일단 날치기로 막 읽었죠. 정독해서 읽을 수 없으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수 십 권 정도를 보니 대충은 윤곽이 잡히고 교수님한테 가서 우리가 뭘 모른다고 이야기해도 되는구나. 이정도 감은 잡히더라고요. 사실 그걸 들고 교수님을 찾아 뵀고, 사실 많은 것들이 수학자, 수학 교수님들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죠.
카이스트를 한 번 갔었는데 매듭 이론을 전공하시는 분이에요. 저희는 매듭이론이라니까 수학이 그런 분야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죠. 오늘은 우리가 모르는 고차원의 수학 용어구나 매듭이. 이렇게 찾아 뵀고, 말씀을 쭉 나눠 보니까 그 매듭이론이 의미하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매듭이에요. 똑같아요. 줄로 묶잖아요. 그걸 연구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 교수님 말씀으로는 이게 우주에 도대체 존재하는 매듭의 가지 수가 몇 가지인가. 이걸로 출발된 학문이에요. 그 교수님한테 교수님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씀인 거 같은데 그거를 연구해서 어디다 써먹습니까? 이렇게. 이 교수님이 약간 쇼크를 먹었죠. 왜냐하면 한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에 한 시간 뒤에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근데 이제 저는 굉장히 솔직한 질문이고 듣고 싶은 대답이었거든요.
왜 그걸 하냐? 그냥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수학이라는 툴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나고 그걸 호기심의 눈으로 보고 그 답을 찾고 싶을 때, 그걸 수학자들이 미친 듯이 그 답을 막 찾아가는 거죠. 우리는 기획방향을 그 쪽으로 잡아야겠다. 수학자가 뭘 하는 사람인지를 사람들에게 잘 전해주면 수학이 어떤 학문이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전해 줄 수 있겠다. 이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그 때부터 문명과 수학이라는 프로그램은 수학자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짜야겠다. 역사적 유명한 수학자들의 에피소드를 넣고, 문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학의 개념을 만든 수학자들의 일대기들을 잘 엮어서 하면 그걸 다 보고 나면 본 사람들은 수학이 이런 학문이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읽었던 책과 교수님을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거는 없는 것 같아요. 많은 부분이 이제 구성 단계에서 가닥을 잡히면서 대부분 버려졌는데 버려진 게 낙엽 같네요. 낙엽. 그때는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해서 다 뿌릴 수밖에 없는 건데, 그게 나중에 촬영을 할 때나 원고를 쓸 때나 이럴 때 떨어진 낙엽이 거름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대부분 프로그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당연히 그런 PD는 아니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시는 PD를 옆에서 보면 자신의 시각으로 아이템, 대상물을 봐야 되는 것 같아요.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굉장히 어려운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 아이템,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 본질을 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제 생각에는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리는 것 같아요. 대부분은 처음에 접했을 때는 남들의 시각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치면 수학책을 읽으면 다 남이 쓴 수학 책이고, 교수님 만나서 이야기 들으면 그 분이 생각하시는 건데 남의 생각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까 그거를 어떻게든 소화해내서 내 시각으로 그걸 봐야 되는데, 그거를 잘 보는 PD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사랑 대한 소설은 소설이 생길 때부터 지금 까지 있었잖아요. 계속 나오잖아요. 연작으로 계속 나오잖아요. 그런데 어떤 작가가 어떤 시각으로 본인이 바라보는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기가 다루려고 하는 대상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본질의 모습을 누가 얼마만큼 나의 시각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다큐멘터리와 그렇지 않은 다큐멘터리로 나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 EBS 다큐프라임 <문명과 수학>, <빛의 물리학>, <넘버스>를 제작한 김형준 EBS PD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에서 아이템의 중요성과 제작 에피소드를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