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 안녕하세요.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강의로 <한눈에 살펴보는 우리(한국)나라 뮤지컬 이야기> 청년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한국어로 공연이 됐었던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2001년 서울의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던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거액이었던 140여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무대를 꾸몄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영화계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비가 대략 30~40억 정도였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7개월의 공연에 대형 영화 서너 편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었던 실험이 감행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이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무척이나 부정적인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제작에 임했던 회사는 제미로라는 회사였습니다. 공연사업부문 대표로 우리나라 초창기 대표적인 1세대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설도윤 대표가 기용되어서 이 같은 실험을 단행을 했는데요.
돈키호테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무모해 보이기까지도 했었던 <오페라의 유령>의 우리말 공연,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초연의 막을 내린 후 190억 원이 넘는 아주 높은 매출을 달성해서 공연도 많은 예산을 들여 잘 만들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실증적으로 증명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흥 뮤지컬 단체의 성장
전문가 : 결국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은 이 시기 이후에 우리나라 뮤지컬계에 우후죽순처럼 많은 수의 대형 수입 뮤지컬들이 앞다퉈 소개되는 시대구분상 팽창기 혹은 청년기를 경험하게 만들어줍니다.
영미권의 유명 뮤지컬 작품의 번안시장의 가파른 성장
전문가 : <오페라의 유령> 이후에 <캣츠>, <미녀와 야수> 등 일련의 영미권 대형 특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로 대변되는 시장의 흥행 뮤지컬들을 소개한 설앤컴퍼니와 클립서비스 등이 이런 시장의 팽창을 주도하면서 한국 뮤지컬 산업의 바탕을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할만합니다.
이 시기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매출 구조는 거의 매해 17~18%의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선보이게 되는데요, 문화산업 중에서는 단일 산업 자체의 규모는 작았지만 어느 장르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이 계속 지속된 것은 사실 뮤지컬 말고는 없었다고까지도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시장의 팽창이 자연스럽게 시장의 성숙을 가져올 수는 없겠죠. 하지만 무대가 배고픈 예술 장르라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공연도 큰 규모의 투자와 제작이 있으면 다시 큰 규모의 매출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된 것이 바로 이들이 만들어낸 성과였다고도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창작 뮤지컬을 향한 노력
전문가 :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의 제작과 성장도 이 시기에 목격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극단 에이콤에서 제작한 <명성황후>였는데요, 구한말 비운의 국모 이야기를 다룬 <명성황후>를 제작해 오랜 기간 작품을 숙성시키는 선례를 낳음으로써 기념비적인 성과를 낳게 됐습니다.
소극장 뮤지컬과 넌버벌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뮤지컬의 양식적 실험도 왕성하게 전개됐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PMC의 <난타>입니다. 결혼식 전날 혼례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의 풍경을 빗대 만든 이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한국형 창작 뮤지컬의 실험과 도전을 담아냈고요. 오프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뤄내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오프브로드웨이라는 표현은 조금 작은 공연가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한데요. <난타> 자체가 큰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 아니라 좀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었다는 뜻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대중음악 작곡가였던 김민기가 설립한 뮤지컬 극단, 학전도 큰 성과를 낳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독일의 리니에 아인스(Linie Eins)를 우리나라의 지하철로 빗대 재구성한 <지하철 1호선>을 만들었고요, 영국의 뮤지컬 작품인 <블러드 브라더스>(Blood Brothers)를 각색한 뮤지컬 <의형제>, 그리고 창작극으로 만들었던 <개똥이>나 어린이 뮤지컬 등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서 한국적 소극장 뮤지컬의 개가와 전통을 마련하는 성과를 달성해냈습니다.
지금도 이들 무대와 작품을 통해 발굴된 일단의 배우들이 우리나라 문화계의 영화나 드라마, 연극, 뮤지컬 모든 분야에서 아주 든든한 토양 역할을 담당해 내고 있습니다.
뮤지컬 산업의 발전은 다양한 배우들의 참여 확대로 이어지기도 했죠. 예그린 극단과 <살짜기 옵소예> 등으로 대변되는 1세대 배우들이 주로 가수나 탤런트, 그리고 연극인 등으로 주요한 인력 풀을 형성했다고 말한다면,
2세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은 전문 배우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경우는 남경읍, 남경주 형제, 또 전수경, 주성원, 최정원 같은 배우들이죠. 뮤지컬을 통해서 인기를 누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배우 군을 형성해냈다고 평가할만합니다.
청년기 한국 뮤지컬 시장은 다양한 직군의 참여와 시장의 팽창을 경험하고 있는 3세대 배우들의 활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재미난 평가도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배경과 직군의 배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3세대 배우들은 기존의 뮤지컬 전문 배우군의 일단의 배우들은 물론, <오페라의 유령> 이후 흔히 벨칸토 창법이라 불리는 성악적 발성을 할 수 있는 클래식이나 성악의 보컬 스타일을 구현해낼 수 있는 배우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고요. 또 이외에도 영화계나 가요계 특히 아이돌 들의 무대 진출이 두드러지는 스타 마케팅의 경향성들도 등장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으로 비롯된 글로벌화
전문가 : 한국 뮤지컬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예기치 못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논쟁, 세계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전용관인 샤롯데 극장의 등장과 함께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의 우리말 공연을 일본 극단인 시키, 사계라고 보통 우리가 쓸 수 있는, 한자로 쓰는 시키가 제작하게 되는 일단의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불거지게 됩니다.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약 8~10배 정도 더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뮤지컬이라는 공연 예술 장르가 티켓 가격이 굉장히 비싸고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국가에서 산업화가 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보다 조금 경제 발전 속도가 빨랐었던 일본이 뮤지컬 시장을 더 크게 성장시킨 데에는 당연한 배경이 있었다.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죠.
일본 극단 시키는 이런 일본 뮤지컬 시장, 공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주 큰 기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키의 대표였던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이미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서구 뮤지컬을 일본에 접목시키려고 노력을 했고요. 그래서 극단 시키를 만들어 일본 전역에 공연장을 갖고 여러 가지 서양의 영미권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그런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본 극단이었던 시키는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시키가 지금까지 만들었었던 노하우에 한국 배우들의 에너제틱 한 모습들, 그리고 중국 배우들의 몸을 잘 쓰는 기예 같은 것들을 더해서 아시아 뮤지컬 시장을 개발하려고 하는 큰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비롯된 것이 바로 우리말 공연 <라이온 킹>을 우리나라 극단이 아닌 일본 극단이 막을 올리는 사건으로 전개가 됐던 것이죠.
하지만 이 사건은 국내 뮤지컬 관계자로 하여금 문화 사대주의 혹은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논쟁 같은 것들을 불러일으키게 됐고요, 아주 큰 반발을 낳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라이온 킹> 우리말 공연을 1년 가량 하고요, 큰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손실을 기록한 채 물러나게 되는 기록을 낳게 됐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계가 산업화된 역사는 150여 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15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청년기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비약적인 시장의 팽창을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죠.
마치 70~80년대의 고도성장이 뜻하지 않은 성장통을 우리 사회에 가져왔던 것처럼, 뮤지컬계도 급속한 시장의 팽창이 그대로 빠른 시장의 성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여러 난제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성장통을 가져오고 있다.라고도 평가할만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에 대한 보다 긴 안목의 혜안과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러 뮤지컬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보다 긴 안목의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정말 성숙하려면 어떤 것들, 어떤 토대를 마련하고 어떤 분위기를 마련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들도 뒤따라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이 특정 작품을 만들어서 그것들이 큰 인기를 누리는 쪽에 집중됐다면 앞으로 다가올 환경의 조성은 그런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의 조성, 그러니까 어떤 나무가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단지 그 나무 아래에서 좋은 열매가 맺길 기다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주사를 놓기도 하고요, 또 좋은 비료를 주기도 하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이제 청년기를 맞이한 우리나라 뮤지컬계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될 시기가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신흥 뮤지컬 단체의 성장, 번안시장과 창작 뮤지컬 시장의 가파른 성장, 일본 극단으로 비롯된 글로벌화 등을 통해 뮤지컬 시장의 산업화에 대해 알아본다.
02. 강사 소개
원종원 (뮤지컬평론가)
03. 강사 이력
- 순천향대학교 교수 - 방송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 진행 - 공연 <원종원의 강연 콘서트-뮤지컬 스토퍼스> 진행
- 주크박스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2013) -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동아시아, 2006) -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세상의창,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