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래> 창작뮤지컬의 희망을 쏘다!
Q. 첫 질문부터 식상할 순 있겠으나 또 피할 수 없는 질문일 것 같은데요. 뮤지컬 빨래는 어떤 작품이고 또 어떤 내용인지 들려주세요.
A. 빨래는요.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강릉이라는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직장을 가지게 된 나영이라는 인물이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갔는데 마침 몽골에서 한국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이주해 온 솔롱고라는 총각이 빨래를 널러 온 나영이라는 인물을 보게 되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죠. 빨래 때문에 서로가 인연이 되는 그런 러브스토리고요.
그리고 나영이라는 인물이 서울에 올라와서 직장 생활을 하니 힘든 일이 많았겠죠. 근데 이제 이 힘든 일이 있을 때 옆방에 사는 주인 할머니 그리고 옆방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나영이를 위로해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Q. 선생님 빨래가 초연 이후 지금 11년째 계속 되고 있어요. 10년 이상 이렇게 빨래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것인지 좀 듣고 싶은데요.
A. 일단 다른 뮤지컬과 다른 차별성이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뮤지컬을 통해서 보고 싶어 하는 게 사실 일반적으로 판타지인데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이 현실을 다루면서 현실을 환상적으로 다뤄주기도 하고 현실을 아주 깊게 '나 뮤지컬에서 이런 걸 볼지 몰랐는데' 이렇게 다뤄주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계속 최근 우리가 10년 간 특히 젊은 사람들이 뮤지컬은 어쨌든 20~30대 관객들이 주 관객들인데 위로를 받을만한 구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특히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 나도 힘들고 억울했었는데 같이 공감하고 나 힘내야겠다' 어떤 커다란 메시지를 통해서 힘을 얻어 가기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다시 자기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어떤 그런 이야기, 소재의 힘!
그리고 두 번째는 작곡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이 음악이 주는 멜로디 혹은 여러 가지 것들을 관객들이 많이 좋아하고 있고 지금은 참 예뻐요, 안녕 이런 솔롱고가 부르는 솔로는 노래방에서, 그리고 결혼식 축가 혹은 프로포즈 이러한 것 등을 말이죠. 이 2가지 힘이 아닌가 합니다.
Q. 10년 넘게 이렇게 공연을 하시면서 많은 부분들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생각해요. 그럼 연출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중에 가장 크게 변화했던 부분들이 있는지?
A. 제 연출이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장면은 '슬플 땐 빨래를 해’라는 장면입니다. 세 여성이 같이 빨래를 하다가 그 빨래 천으로 나영이를 넘기고 빨래의 바람에 나영이 머리가 훅 날리고 비누 거품이 막 나오고 빨래가 내려와서 춤을 추고 어쨌든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죠. 그런데 이 장면을 졸업 작품의 영상을 보면 노래가 이렇게 신나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그런 안무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특히 나영이가 1막 때 불렀던 빨래를 리프라이즈(반복)를 해서 굉장히 '힘내라, 힘들지' 이 정도로 그냥 끝났던 노래였는데 작품을 올리고 나니 이게 아닌 것 같아요. 이게 여자들이 여자들을 위로하는 방식이 이게 아닌 거죠. 오히려 '힘내, 인생 뭐 별거 있니?' 반대로 웃으면서 위로하는 방식이 이게 서로를 위로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여성들이 위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반영해서 음악이 굉장히 이렇게 박수치면서 신나게 바뀌게 됐고 신나게 바뀌다 보니까 춤이 들어가게 됐고 그럼 여기서 춤은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재료들, 빨래로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래서 빨래를 이용하게 되고 빨래를 이용하다 보니 젖은 빨래니까 자연스럽게 빨래에서 나는 향기가 극장에서 퍼지게 되고 빨래를 이용하다보니 물방울이 튀게 되고 그게 관객들에게 어떤 환상적인 즐거움을 주게 되고 빨래가 직접 춤을 출까?
그럼 위에서 빨래 줄에서 빨래가 내려오고 그러면 빨래는 비눗방울이 나오게 되고 이걸 10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많은 배우들을 만나면서 더 디테일하게 바뀌게 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Q. 요즘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이 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빨래>같은 경우에는 특별한 K-POP 스타나 어떤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는 작품은 아니잖아요. 근데 <빨래>의 어떤 점이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A. 일단은 한류 때문이고요. 한류를 통해서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지금 동남아시아는 ‘한류앓이’를 하고 있죠. 또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실은 빨래를 제일 먼저 본인들의 나라에 소개하고 싶었던 나라는 이집트였어요. 이집트, 이란, 이라크, 이 중동아시아 쪽에도 이 한류가 꽤 인기있고요. 이제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지금 세계 각국에 엄청나게 퍼져 있어요. 이제 그 한류때문에 일단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 이제 그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연극은 좋아하는 사람! 그렇다 보니까 이 한류를 통해서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되면서 대학로에 오게 되고 그러면서 이런 저런 공연을 보다가 '아 빨래다' 이렇게 된 거죠. 기본적으로는 한류가 배경이고요.
그리고 그 이집트의 그 분께서 이야기했던 건 여성들의 삶이었어요. 본인들이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 그게 여성들의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고 혹은 약자들의 삶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 빨래에는 뭔가 억울하고 근데 그런 것들이 해소되지 않을 때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 이런 것들인데요. 힘들 때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는가? 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세계 만국 공통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이 일본에 공연을 하게 된 계기도 마침 쓰나미 이후에 원전사고가 있고 사람들이 굉장히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이 힘든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일본 프로듀서가 하게 됐고 마침 그 때 빨래를 봤는데 ‘위로를 해야겠다’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리고 이 작품이 또 중국에 진출하게 된 배경은 한류를 통해서 많은 문화인들이 대학로에 와서 공연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됐는데 중국의 한 극단 배우들이 이 작품을 보고 우리들이 중국에서 중국도 지금 베이징이라든가 상하이라든가 이 큰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가서 생활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첫 노래 가사인 ‘서울살이 몇 해인가요’처럼 베이징살이 몇 해인가요, 상하이살이 몇 해인가요 던지는 순간 울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그러면서 아 이 작품으로 만나야 겠다라고 중국 배우들이 본인의 나라로 돌아가서 극단 대표한테 이 작품하자고 엄청나게 설득했다고 들었어요.
그런 계기로 만나게 됐는데 중요한 건 빨래는 사실 너무나도 서울적인 혹은 한국적인 작품이죠.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 드라마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메시지가 중국이든 일본이든 중동아시아든 ‘사람들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는가’인 것 같아요. 일단은 한류를 계기로 그리고 이 작품에 들어있는 서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일본, 그리고 중국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간 것 같습니다.
Q. 선생님 제가 듣기론 중국에서 빨래도 선생님이 직접 연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연출법이 좀 달랐나요?
A. 중국 같은 경우에는 지금 내년에 중국 배우들하고 같이 연습해서 중국 배우들이 만드는 빨래가 올라갈 계획이고 그리고 올해 1월 상하이, 그리고 8월에 상하이, 북경 두 곳에서 한국 배우들이 직접 가서 공연을 했는데요. 지금 일본과 중국이 다른 케이스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연출법이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중국 관객들은 코미디를 좋아해요. 그리고 반응이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일본 관객들은 굉장히 좋은 것이 있으면 경외하는 마음, '좋습니다' 이런 마음이고요.
중국 관객들은 뭔가 좋은 것이 나타나면 굉장히 격하죠. 그래서 좀 더 우리가 빨래 같은 경우에는 특히 중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부분들은 이 안에 있는 코미디들, 배우들의 적극적인 연기 방식들, 대본에서 지켜야 하는 대사가 있고요. 그리고 그 배우들이 할 수 있는 또 대사 라인들이 또 있어요. 그래서 그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대사들을 추가해서 현장에서 만들기도 하는데요. 중국에서는 중국말들을 중간 중간 조금씩 넣어가면서 했었어요. 그리고 중국에서 마침 생활을 하니까 배우들이 직접 예를 들면 음향 오퍼레이터가 중국 사람이니까 중국인인 음향 스텝이 마이크를 채워주면서 ‘괜찮아요?’ 본인도 한국 사람을 만나니까 ‘괜찮아요?, 좋아요?, 하오!, 메이?시, 괜찮아요!’ 이런 말을 배우다 보니까 서로 친밀해지는 거죠. 그러면서 그게 자연스럽게 무대에 일부로 짜지 않아도 어떤 것들은 계획해서 가기도 하고요.
사실 이얼싼 숫자를 세는 거, 예를 들면 빨래 통을 같이 드는 대목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하나 둘 셋 으?’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얼 싼 짜요’ 이런 말들을 이제 스스럼없이 중간 중간에 하면서 가는데 굉장히 관객들이 좋아했고 또 배우가 무대에서 미끄러워서 한번 넘어진 적이 있어요. 그래서 관객이 꺅 웃었죠. 그랬더니 이 배우가 메이?시 나 괜찮다고 소통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들. 그래서 보통의 공연이라면 자막 같은 경우에 양쪽에 스크린에 설치를 하거나 아니면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저희는 관객들이 좀 더 직접 무대에서 이 시선을 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기 이 발코니에다가 무대 한가운데에 자막을 설치 했었고요. #11 이제 드라마를 집중하게 만드는 것 이게 중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드라마가 갖고 있는 그런 디테일들을 전체적인 그림이나 미장센도 중요하만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걸 집중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노력했었습니다.
Q. 외국의 문화와 우리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혹시 연출하실 때 힘들었던 부분이 있으셨나요?
A. 아무래도 일본과 중국에 가서 연출을 하다 보니까 제가 마치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된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요. 예전에 이런 장면이 있었어요. 나영이가 솔롱고에게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그런 대목인데요. 여기 옥상에 나영이 여기는 솔롱고, 나영이가 '제 이름은 나영입니다.' 이게 대사인데요. '와따시노 나마에와 나영데스' 이 말인데, '와따시노 나마에와 나영데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잠깐만! 나영이가 지금 솔롱고한테 반해서 나 예쁘지? 이 장면이 아니야', '아니요 저는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한 게 아닌데요’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제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거죠. 우린 보통 내 이름은 나영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내 이름은 나를 가르킬 때 제스처가 나라는 사람이 여기 가슴에 있기 때문에 나를 가르킬 때 가슴에 손을 얹는데요. 일본 문화는 나라는 사람이 가오. 즉, 내 얼굴에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가르킬 때 여기 볼이나 턱이나 여기 얼굴 어디를 찍으면서 보통 이야기하는 게 그들의 문화거든요.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알게 되는 것도 정말 즐거운 순간이었고요. 아무래도 이런 문화적 차이를 알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2. 10년 연출인생의 원동력 꿈과 즐거움
Q. 선생님께서 뮤지컬이나 연극의 대본을 쓰시지만 연출가로서도 굉장히 유명하신데요. 연출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혹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실은 저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연기가 저 스스로도 못마땅하고 연기를 할 때는 늘 뭔가 내가 잘못한다는 생각이 저를 스스로 괴롭혔고요. 그리고 막 즐겁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제가 굴을 팠겠어요. 혼자서 이 연습 저 연습 해보고 술도 마시고 이러저러한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작품을 이제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출할 기회가 왔었는데 이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웃으면서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길을 걸어가면서 무대 저 바퀴를 저 무대에 저렇게 세우면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이런 상상하고 그게 너무 재미있는 일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배우가 아니고 연출을 했을 때 훨씬 더 즐겁다는 거를 알게 됐고 그리고 극작을 하게 된 건 제가 연출할 작품을 스스로 마련한 것 그렇게 극작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저는 이게 제일 궁금했었는데 선생님이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해요. 그게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떤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가장 처음에 얻을 수 있는 그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지?
A. 보통 제가 예를 들면 <빨래>의 영감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옆집 총각이 저한테 말을 걸었다’였는데, 일기인 것 같아요. 그 날 제가 있었던 이야기를 일기를 썼었고요. 일기를 쓰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고 일기나 편지도 많이 썼었는데요. 그런 자기가 있었던 일을 돌아보는 그 순간들 그래서 제가 경험하고 다시 그걸 글로 남기면서 그게 저한테 좋은 글쓰기의 영감, 재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Q. 선생님 그 작가 분들은 보통 리얼리티를 구사하기 위해서 자료 조사를 많이 하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자료 조사를 하시는지 좀 들려주세요.
A. 빨래 같은 경우에는 그 때 작품을 쓸 때가 2003년도였고 당시에 있던 이주 노동자들의 어떤 법이 조금 바뀌고 있는 시점이었고 실제로 와서 일하고 있었던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불리한 법이 제정되고 있던 시점이어서 성공회 성당에서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작품을 같이 준비하고 있었던 주인공 배우들, 그리고 연출부들, 스텝들이 같이 그 천막 농성장에 가서 같이 이야기도 듣고 ‘우리는 이런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건네고, 그리고 그 날 이제 농성을 문화 축제로 바꿔서 하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마침 날짜가 그렇게 되어서 그 날 하루 종일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그래서 짧은 촌극을 만들어서 밤에는 어떤 배우는 노래하는 팀에 섞여서 노래도 부르고 같이 짧은 어떤 마당극 같은 걸 만들어서 발표하기도 했었는데요. 그게 같이 참여하는 배우나 스텝들에게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그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이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제일 뜨거운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제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고요. 그런 방식들이 주는 뜨거움이 있죠.
Q. 선생님 그러면 뮤지컬 연출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어떤 게 있는지 팁 이런 것들 말씀해주세요.
A. 뮤지컬을 좋아해야 돼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여기 오기까지의 일들을 뮤지컬 장면적으로 상상하는 것들을 즐겨야 돼요. 택시를 탔어요. 택시 아저씨는 오는 내내 나한테 택시 아저씨의 자부심을 이야기를 계속 했는데요. 이 자부심을 이 혼자 부르는 솔로로 계속 노래를 부른다고 머릿속으로 그래서 그 노래의 시작은 그 아저씨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손님, 그러면 첫 가사는 손님. 마지막 대목은 저 영수증 주세요. 마무리 지을까? 이런 것들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이제 뮤지컬은 연극이라든가 다른 무대 장르에 비해서 굉장히 여러 사람들과 여러 크리에이티브들과 협업을 해야 되는 장르여서요. 사람들에 어떤 상상력 그리고 능력 그리고 같이 함께하는 즐거움 혹은 이 에너지들을 끌어 내는 것, 그래서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하고 그리고 협업을 함께 끝까지 함께 이뤄낼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도 필요하고 그리고 때로는 굉장히 강력하게 이 팀을 이끌고 갈 그런 힘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Q. 10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긴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좀 힘들었던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A. 제가 연출 공부를 할 때 첫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연출은 소통이다’라는 문장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소통의 부재, 소통에서 오는 오해 이런 것들인 것 같아요. 물론 첫 번째는 제가 만든 이 작품이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을 때 그게 가장 힘든 지점이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저랑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배우들과의 소통이 힘든 점 때로는 오해.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이 하는 만나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는 즐거움도 굉장히 크지만 사실은 즐거움의 순간은 굉장히 짧고 소통에서 오는 그런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소통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런 소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는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또 상대방의 행동을 배려하는 것의 결과다’라는 이야기를 제 친구가 해주었는데요. 작품 역시 배우나 스텝들과 함께 잘 꾸려갔을 때 좋은 소통, 즉 이 작품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 같은데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그런 소통을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인데 예를 들면 어떤 때는 배우들과 사이가 나빠진 채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것들이 예전에는 되게 힘들었었는데 최근에는 시간이 몇 년 지나고 나니 '나 그랬었는데 지금 애 낳고 잘살고 있다오' 이런 메시지가 오기도 하고요. '그래 나도 지금 좀 일하는 게 좀 쉬워 졌어' 이건 나이가 준 선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땐 내가 좀 신경질적이었지' 이런 식의 편한 메시지를 가끔씩 주고 받기도 하는데요. 당장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계속 그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면 또 해결되는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3. 추민주가 말하는 연출법 노하우
Q. 선생님께서는 직접 쓴 작품도 연출을 하시지만 다른 작품들도 연출을 하시잖아요. 그 2개를 연출할 때 혹시 다른 점이 있을까요?
A. 일단은 제가 쓴 작품은 제가 대사를 외울 필요가 없고요. 그래서 좀 작품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쓰고 나서 다음을 준비하는 단계는 이미 쓸 때 ‘어떻게 무대에서 펼쳐졌으면 좋겠다’라는 어떤 그림이라든가 자료 조사라든가 이런 것들이 끝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요. 그리고 대신 그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이 작품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어떤 여지들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스텝들과 배우들과 뭔가 이야기를 나눌 때 저의 고집이 자꾸 커지죠. 그런 것들이 있고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출했을 때는 '이 작가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감탄하고 경외하고 또 연구하고 이런 시간들이 또 따로 필요한 것 같아요.
Q. 선생님이 작품을 연출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라는 거 같아요. 작가든 연출이든 중요한 것은 작곡가든 뮤지컬이나 연극에 있어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내가 관객과 만났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연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학교에서 책으로 혹은 이론으로 연출을 접했을 때 하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혔을 때 하고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혹시 그 둘의 차이점이 있었나요?
A. 책에 없는 게 있죠. 화학 작용이라는 건데요. 물론 저라는 사람과 또 상대방이라는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그 변수가 생길 텐데요.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고요.
책에는 ‘어떤 변수가 생길 것이다’라는 얘기는 없죠. 어떤 화학적인 작용이 생길 것이다. 때로는 이 작품이 본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예를 들어 화학적인 작용이 일으킨 어떤 변수로 인해서 작품이 원래 표현하고 싶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갈 때 그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은 책에 없는데요. 때로는 연출가의 직관이 그 판단을 내리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관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자기가 만들고 있는 혹은 벌어지고 있는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어떤 태도를 어떤 식으로 가질 것인가 이런 것들은 경험에서 또 생겨나는 것도 있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Q. 관객들이 추민주 연출님의 작품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들이 있어요. 다른 연극이나 뮤지컬 캐릭터와는 달리 좀 사람 냄새가 난다라는 건데 혹시 그런 리얼리티를 더 살리기 위한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A.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넌 왜 이렇게 할머니를 좋아하니?' 그래서 저희 할머니뿐만 아니라 시장의 좌판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장을 지나가다가 술을 드신 할머니가 뱉은 말이 대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걸 좋아하고 또 실제로 많은 대사들은 내가 지나가면서 혹은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었던 말들을 녹여서 대사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하는 건 사람 가까이에서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느끼고 이런 것들이 인물 속에 녹아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Q. 최근에 국경의 남쪽도 그렇고 빨래, 연극도 수박이나 그 자식 사랑했네, 나쁜 자석 등 10년 동안 너무 많은 작품을 해오셨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혹은 가장 아쉬웠던 작품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A.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무래도 <빨래>겠죠. 지금도 이 극장에서 오늘도 무대가 올라갈 텐데요. 빨래를 제외하고 또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쑥부쟁이>라는 작품인데요. 쑥부쟁이는 역시 학교에서 만들었다가 제가 빨래는 본격적으로 대학로에서 이렇게 상업적으로 하는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면 쑥부쟁이 같은 경우에는 친구들과 같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학교 강당이든 마당이든 어디 사회 복지 시설이든 이런데 어떤 한 조명이라든가 어떤 무대의 뒷받침 없이도 공연할 수 있도록 레퍼토리(repertory)를 만들어서요. 관객과 오랫동안 만났고 예를 들면 지금은 굉장히 여러 곳에서 주목을 받는 연출가가 되었지만 막 연출이라는 걸 시작했을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때 관객과 만나서 내가 연출가 일수 있는 스스로의 어떤 나의 존재감을 키워 나갔던 작품인데요. 그 작품 활동을 2004년 그리고 2006년, 2007년 그러니까 <빨래>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사실 저라는 사람이 배우를 만나서 뮤지컬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뒷배경이 될 수 있었던 작품이고요. 그 작품을 통해서 계속해서 저는 성장해 나갈 수 있었고요. #7-2 <빨래>라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어떤 힘을 키워나갔던 작품인데요. 그 작품은 내후년 즈음 다시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저한테는 그런 작품들도 <빨래>라는 작품이 있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Q. 사실 작품에 있어서 흥행이 전부는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많은 작품을 하셨을 때 다 흥행이 되었던 건 아니었잖아요. 그렇죠? 그 경험으로 인해서 선생님이 혹시 되려 쌓을 수 있었던 노하우 같은 게 있으신지?
A. 남의 관심과 주목, 칭찬 이런 것들이 우리를 되게 살찌우죠. 자신감이 생기게 하고 또 신이 나고 우리도 박수를 받고 사는 사람들인데 박수만큼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게 없는데 관객이 극장에 많이 찾아와주지 않을 때 오는 실망감 이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어쩔 때는 울기도 하고요. 어쩔 때는 신경질 나서 어디 가서 막 산을 오르고 있기도 하고 아니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오랫동안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근데 중요한 건 내가 여기서 '아, 이런 지점과 관객을 잘 만나지 못했구나'라고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그만해야 될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있다면 그러니까 관객이 없는 것보다 내가 할 말이 없을 때가 그때가 연출가로서, 극작가로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관객이 이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그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것보다는 할 말이 없는 순간인 것 같아요.
Q. 그럼 선생님이 생각하는 뮤지컬 연출가를 한마디로 한다면?
A. 이 세상을 음악으로 이해하고 노래를 통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저처럼 제 2의 추민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내고 떠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그것이 연출가, 극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밑거름이라고 생각하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1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한 편의 뮤지컬을 연출하기 위해 연출가로서의 노력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해외진출 시 어려웠던 점과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던 방안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02. 강사 소개
추민주 (뮤지컬 연출가)
03. 강사 이력
- 뮤지컬 '빨래', '굿모닝 학교' 연출 - 연극 '수박', '그자식 사랑했네', '두근두근 내인생' 연출 - 2005년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극본상 - 2010년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작사작곡상 - 2010년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극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