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방송영상
> 공통
> 방송교양
영화 속 성폭력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 - 영화 콘텐츠와 시선의 성차별 메커니즘
전문가 : 안녕하세요? 유지나입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영화콘텐츠와 성차별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미투 상황은 당연히 영화, 현장 그리고 영화보기, 영화 콘텐츠 전반적으로 다시 보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하면 여러 사람이 있지만 특히 역사적으로 나혜석은 굉장한 상징성과 많은 시대의 박해를 당했습니다. 1934년에 나혜석 선생님이 발표한 이혼고백서에 이런 대목이 있죠. 여자도 사람이외다. 그 말은 여자는 남성중심 흔히 가부장제라고 하는 사회에서 제대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당대의 아픔, 여전히 그 어떤 흔적들이 지금도 이어지는 부분을 보여주는데요. 특히 나혜석 선생님은 글도 있지만 영화로도 화조라는 영화로 만들어져서 그 당대의 어떤 습관처럼 계몽주의적으로 여자가 너무 나서면 안 된다라는 어떤 교훈적인 문예영화로 각색된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많이 고쳐진 것 같지만 최근에 장자연씨 사태로 불려지고 있는 것들은 정말 많은 검찰의 연이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 현실과 영화가 만나는 공기처럼 스며있는 더러운 성차별을 몰아내는 것, 공기처럼 스며있는 이라는 뜻은 집단 무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가 공기는 안 보이잖아요?
그것처럼 영화보기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오늘 저와 집중적으로 시선 작동의 메커니즘으로 알아볼 텐데요. 영화는 근대문물의 산물로서 어떤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이죠. 시네마 영화인데요.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뤼미에르형제가 붙인 기계이름은 움직임을 기록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네마가 키노 이런 식으로 움직임이죠.
그것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 1895년 작품인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도착이고요. 그것의 전조는 이미 사진기의 발달로서 그림에 과거 사실주의가 허물어진 인상파들의 대표작인 클로드 모네의 그림도 기차의 도착입니다.
움직임, 특히 인간도 움직이는 존재인데요. 그 중에서도 여성은 매우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특히 19세기 말에 영화가 나왔을 때 사실이 우리보다도 사회에 진출한 현대 여성만큼 많은 여성들이 있지도 않았고요. 이런 민주화라든가 대중적인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대접을 받지 못해온 것은 가부장적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라는 것은 근대문화에서 기계복제로서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 이 기차의 도착처럼 또 많은 인간과 사물들 기계들이 움직이고 자연도 움직이죠. 구름도 움직이고 그것처럼 여자의 몸도 움직인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보여지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이제 남자가 주로 제작 쪽, 만들어내는 창작의 입장에 서서 어떤 것을 만들고 어떤 것을 재밌게 보여주고 이러면서 영화는 곧 산업화되는데요. 그래서 나온 그 영화를 나중에 장뤼크 고다르라는 누벨바그의 상징적인 대표자이기도 하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 또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장뤼크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라는 것을 영화로 찍은 거죠. 영화사 다큐를 찍었는데요. 영화의 역사들이라고 해서 굉장히 희귀한 어떤 관찰과 철학적인 걸로 많은 영화 학도들한테 감동을 준 작품인데 거기서 이런 말이 저한테는 참 꽂혔어요. 영화라는 것은 어떤 Girl and Gun이다 영어로 이렇게 말했는데요. 걸은 여성이고 건은 총이죠. 그게 영화사적인 장르의 역사에서 보면 멜로드라마와 어떤 그 액션 특히 할리우드에서 총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거에서 남성성인 총기, 건 그리고 여성이라는 걸 그런데 여성이라고 그러면 여성의 몸입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영화사 속에서 이루어져있는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관음증으로서 들여다보게 해주기도 하죠. 관음증이라는 것은 이제 voyeurism이라고도 말하고요. 몰래 훔쳐보는 그런 기쁨 같은 건데 이건 뭐 꼭 변태적이나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요새는 영화를 뭐 손 안의 스마트폰이나 휴대폰으로 볼 수 있고 불을 켜놓고도 작은 컴퓨터 화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영화라는 것은 커다란 공간, 까맣게 빛을 차단한 공간에서 빛이 나오는 스크린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스크린 안에 있는 인물은 나를 못 보지만 나는 시선을 갖고 그 화면을 본다는 어떤 면에서 지배할 수도 있고 모든 걸 나는 보고 있다, 이걸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면 금방 이해되는데요.
흔히 기독교적인 전통이 강한 서양영화에서 절대자로서의 신을 그릴 때는 하나의 이미지 세상을 주도하는 어떤 존재 그러니까 보는 자는 보여지지 않을 때 더 권력을 갖습니다. 이런 것을 관음증적인 시선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voyeurism이라고 그러죠. 그래서 이거는 영화뿐만 아니라 사진이라든가 수많은 것 혹은 훔쳐오기 좀 말하기는 민망스러워도 매매춘이죠. 어떤 돈을 내는 자본주의에서의 돈을 내는 자가 주인이니까요. 자기한테 돈을 받는 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것 이런 거를 영화로 한 파리텍사스 같은 명장면도 있습니다. 어떤 돈을 내는 고객인 남성이 그 여성을 창문을 놓고 돈을 내는 고객인 남성은 여성을 보지만 여성은 남성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배하는 자가 하라는 대로 움직임을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영화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모든 어떤 인간과 자본과 권력이 유지되는 그런 것들이 작용하는 곳에서 이 관음증, voyeurism이라는 것이 있고 영화는 초기부터 이런 시선 즉 카메라의 시선이 하나의 이미지 세상을 만들고 누가 누구를 보는가에서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따라갈 때 고다르의 말처럼 Girl and Gun, 총을 쥔 남자가 여자를 보고 있다라는 뜻도 될 수 있지만 여기서 총은 권력이고 자본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크게 영화의 장르 대표적인 장르 두 가지죠. 여성이 나오는 멜로드라마 혹은 남성이 지배하는 탐험가, 정복의 역사로서의 총이 나올 수도 있는데요.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는 여성의 몸을 지배하는 것들을 대변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어떤 자본 다시 말하면 자본을 대는 사람이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시선 메커니즘이 우리의 억압된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는 것이죠.
권력을 가진, 자본을 가진 자에서 자신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관객들이 오 재미있구나 라든가 같이 느끼는 것들이 소위 흥행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영화산업의 핵심인 그 자본 이익의 문제는 이 시선의 전략, 시선의 메커니즘으로 사람들이 동조하고 그것을 같이 재밌게 느끼도록 들어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영화산업에서 이 대중성 확보를 위한 시선의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 할리우드죠. 흔히 할리우드는 이런 그 완전히 지금 4.0이라든가 이런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가장 큰 두 개의 산업은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군수물자산업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전 세계 영화산업을 자본이익의 입장에서 가장 주도한 할리우드에서 이 점은 대표적인 영화작가라든가 어떤 영화 이미지 서사를 우리가 볼 때 굉장히 생생하게 재경험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그 남성의 욕망이라는 것으로서 여성 몸을 관찰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통치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 거기에 서사, 이야기죠. 어떤 우리가 허구라고도 말하는 이 픽션에 어떤 이야기적인 동기가 부여되어 ‘아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 이걸 해결해야 돼.’ 라는 것을 가장 잘 이용한 게 탐정물, 추리물일 텐데요. 그 대표적인 작가로서 우리가 알프레드 히치콕을 거론합니다. 히치콕은 정말 훌륭한 어떤 추리물을 영화화 만든 어떤 그런 이미 걸작으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많고 TV 영화라든가 여러 가지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접했을 대표적인 감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우리가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이 voyeurism이라는 이런 관음증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이창일거예요. 지금 여기서도 여러분들이 포스터랑 볼 수 있는데 어떤 유명한 카메라 사진기자가 있어요. 그런데 부상을 당해서 다리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아파트에서 그냥 칩거, 머물게 되죠. 사람은 움직여야 되잖아요. 그런데 얼마나 답답합니까? 물론 한 발을 쓴다고 해서 모든 걸 쓰는 건 아니지만 다리가 기본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리를 못 쓴다면 어떤 이동이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또 카메라 기자이기 때문에 어떤 보는 거에 대해서 남다른 감각과 흥미와 어떤 그 삶의 동기가 있겠죠. 그래서 이런 망원렌즈 기능이 있는 카메라가 발달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심하잖아요.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앞에 아파트를 이렇게 봅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건물이 들어와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훔쳐보기, 엿보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몸의 그 장애 때문에 하는 거기 때문에 극적인 동기로도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거기다 직업이 카메라 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작가이거든요. 또 카메라로 어떤 세상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 그러니까 평소에 못하는 일을 이제는 자기의 일상 속에서 앞의 집의 여러 가지들을 보면서 뭔가 어여쁜, 자기 생각에 어여쁜 여자가 움직이는 거를 보면 더 기분이 좋겠죠. 굉장히 어떤 면에서는 그런 이성적 욕망을 성적욕망을 가진 남자한테는 더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자세나 이런 것들이 나오겠죠.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전제하에 움직이는 여성의 몸을 상상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대신 우리 관객한테 보여주는 겁니다.
실제로 영화 텍스트에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핵심적인 스타시스템이 키워낸 마릴린 먼로의 예를 우리가 볼 수 있는데요. 환풍구 이렇게 바람이 나오니까 확 올라가잖아요. 그 이미지인데 이건 7년만의 외출이라고 1955년에 빌리 와일더라고 그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 시선을 볼 수 있는데요. 지나가던 신사가 혹은 같이 있던 사람이어도 오 여자의 치마가 올라가면 눈이 시선이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그거는 제가 말을 안 해도 우리가 어떤 그 만드는 연출자 카메라의 시선은 우리가 관객시선과 같이 가게 됩니다. 미국의 제가 기억하기는 미시간 주인가 시카고 어디인가에 최악의 공공예술작품으로 뽑힌 게 바로 마릴린 먼로의 7년만의 외출에서 나왔던 그 치마가 올라가는 장면을 커다란 조각상으로써 어떤 흥미로운 공원의 장식물로 만들었죠. 그런데 2011년인 오늘은 그것이 최악의 공공예술로 선정됐고요. 그래서 철거됐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과거의 100년까지는 아니어도 한 반세기 이전 과거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그래서 현실적으로 지금 서울이나 한국의 어떤 거리에서는 도용되고 있을지라도 어떤 또 공원에서는 철거되는 사람들이 이제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서 보는 시선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카메라 시선이 잡아낸 것들을 보면요. 흥미로운 어떤 이론들은 또 이 사진작업에서도 우리가 알게 되는데요. 어떤 그 파리의 유명한 거리에 있는 갤러리에서 여자의 뒷모습이 누드로써 보여지는 것을 볼 때 경찰은 안 보는 척하면서 보는 거죠. 반면에 어떤 할머니는 그걸 보고 너무 놀라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거겠죠.
이런 식으로 시선이라는 것은 그 상황에 따라서 굉장히 어떤 입장에서 어떤 젠더를 갖고 어떤 섹슈얼리티를 갖고 보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을 영화사에서 시선을 중심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영화도 세상의 변화처럼 변합니다.
영화의 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그 영화사적인 혁명에서 보면은 시네마 베리테라는 거가 있는데 진실로서의 영화인데 여기서도 초기에 카메라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임을 추구하는가 해서 카메라 기기와 인간을 일치시키는데요. 다이렉트 시네마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1960년대 미국의 또 중요한 영화운동이죠. 여기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라는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도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어떤 기차를 찍고 기차역에서 목숨을 내걸고 기차의 도착을 찍는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영화를 찍을 때는 꼭 여성의 어떤 신체 속옷이 있는 은밀한, 평소에는 가려지는 부분을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는 차이를 보여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그 카메라 시선의 권력을 가진 그것을 주도하는 남성과 그것을 따라가는, 거기에 수행된 보여지는 여성이란 어떻게 되는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 네오리얼리즘이라는 2차 대전 말기부터 나온 그 파시스트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정권에 길들여진 영화를 비판하는 영화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은
자전거 도둑에서 그 먹고 살 굉장히 일상의 노동용으로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는 부분도 할리우드의 제가 기억하기로는 리타헤이워즈 그 포스터인데요. 할리우드 여배우의 굉장히 드러난 관능적인 몸을 보면서 붙이다가 그 순간을 어떤 절묘하게 이용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주자인 프랑수와 트뤼포의 쥘과 짐도요. 굉장히 혁신적인 여성 카트린느가 나온 것 같지만 실제로 거기서도 보면은 제목이 쥘과 짐은 두 남자고요. 카트린느라는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고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어떤 남성을 기둥 속에서 오가는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도 저는 참 뭔가 주도하는 남성한테 항상 끼어들어가는 여성을 보는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근대문화 산물인 영화 콘텐츠에서 보여지는 몸에 대한 욕망과 시선 메커니즘을 통해 영화 속 성폭력 및 성차별에 대해 이해한다.
- 동국대학교 교수
- 영상전문 등재 학술지 <씨네포럼> 편집장
- 여성인권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운영위원
- 서울영상위원회 이사
-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
- 희망제작소 이사 역임
- 제2대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 역임
- 제2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역임
- 한국영화인회의 공동의장 역임
- 영상문화학회 이사 역임
- 한국영화학회 이사 역임
- 영상기호학(민음사, 1996)
- 영화논쟁 100라운드(미컴, 1997)
- 영화의 역사: 이론과 실제(까치, 1998)
- 섹슈얼리티와 대중문화(공저)(동인, 1999)
- 멜로드라마란 무엇인가(공저)(민음사, 1999)
-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공저)(문화과학사, 1999)
- 할리우드(한길사, 2000)
- 유지나의 여성영화 산책(생각의나무, 2002)
-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공저)(생각의나무, 2004)
- 배우 신성일(공저)(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 역서 :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민음사, 2017)
- 시나리오작가를 위한 심리학(인벤션, 2017)
-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공저) 등(작가, 2018)
연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