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 안녕하세요.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입니다. <한눈에 살펴보는 우리(한국) 뮤지컬 이야기>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뮤지컬의 도입과 유아기, 그리고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시대적 구분에 대한 연구, 학계에서는 아주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자에 따라서 그 시대적 구분을 여러 가지 조작적 정의에 따라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강의에서는 한국 뮤지컬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도입기, 유아기, 성장기, 그리고 청년기의 4개의 시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을 구분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저는 아직 성숙기나 장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시각을 근간으로 시대구분을 해보려 하는데요, 그것은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이 지금도 끊임없이 또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가정을 반영하고자 한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이런 성숙기나 장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강의에서는 그것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전제를 통해서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특히 한국 뮤지컬의 도입기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을 말할 때, 흔히 창작 뮤지컬과 수입 뮤지컬로 구분을 합니다. 수입 뮤지컬은 다시 외국 원작을 가져와 우리말로 번역해 무대를 꾸미는 번안 뮤지컬 시장 혹은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과 외국에서 배우와 스텝, 연출이 직접 내한해서 무대를 꾸미는 오리지널 뮤지컬 혹은 투어 뮤지컬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들 용어는 사실 정교하거나 치밀한 개념이라고 까지는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예를 들자면, 오리지널이라는 용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연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초연 배우가 나오는 무대,즉 오리지널 캐스트가 참여하는 프로덕션만을 일컫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오래 공연을 하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초연 배우들이 나오는 무대를 만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10년, 20년씩 공연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배우도 나이도 들게 마련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 캐스트를 만난다는 건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까지도 말씀드릴 수 있는 거죠.
외국어로 공연이 된다고 무조건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마케팅적인 수사에 불과하다고까지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 뮤지컬을 영어로 번안한 무대가 내한해도 오리지널 뮤지컬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창작 뮤지컬이라는 표현도 사실 완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입 뮤지컬이라고 하더라도 창작돼야 하는 뮤지컬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요. 수입이든 국내산이든 결국 모든 뮤지컬은 창작돼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들이 문화예술 콘텐츠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하게 된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창작 뮤지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국수주의적이거나 혹은 폐쇄적인 사고, 혹은 국내 뮤지컬 관계자들의 자국 우선주의, 혹은 자국 예술가들을 보호하거나 유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또 다른 마케팅적인 수사라는 지적도 등장을 한 바가 있습니다.
창작 뮤지컬 자체도 개념 정의가 좀 모호하다. 이런 지적도 있었습니다. 만약 작사가가 한국인이고 작곡가가 외국인이면,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인가 아닌가 이런 개념 자체가 모호해진다는 뜻이죠. 또 우리나라 배우가 몇 명이 참여해야 하는지, 51%가 외국인이고, 49%가 한국인이 참여한 프로덕션은 창작인지 아닌지에 대한 개념도 굉장히 모호할 뿐입니다.
그래서 창작 뮤지컬보다는 K팝처럼 K뮤지컬 혹은 한국 뮤지컬, 이렇게 명명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한국 뮤지컬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창작 뮤지컬의 개념을 저작권으로만 한정을 해서 한국 국적의 제작사가 참여했으며, 그 수익의 절대적 퍼센티지가 한국 제작사로 귀속되는 경우를 한정해 창작 뮤지컬 혹은 K뮤지컬이라 개념화한 조작적 정의를 논의의 바탕에 두고자 합니다.
관 주도적인 공공적 성격의 공연들 등장
전문가 : 그럼 이런 시각을 전제로 봐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은 어떤 작품일까요? 흔히 <살짜기 옵서예>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일반 대중들에겐 패티 김의 노래로 더 유명한 제목이기도 한데요. 예그린악단에 의해 막을 올렸던 작품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고전인 배비장타령을 가져다 만든 뮤지컬 작품이었죠.
배비장타령은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제주도로 부임한 배비장이 처음에는 양반 체면을 거들먹거리며 여색에 유혹당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다가 기생 애랑에게 마음을 뺏겨 그만 뒤주에 갇힌 신세가 된다는 코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비장과 애랑이 나누는 대화는 배비장타령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그런 내용들입니다.
서방님, 이제 서방님이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시면 저는 어떻게 서방님을 그리워하며 살겠습니까. 이빨이라도 하나 뽑아주시면 서방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잘 모시고 살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럼 배비장이 답합니다. 그래, 내가 너를 위해 이빨 하나 못 뽑아주겠니? 그 모습 자체가 하도 우스꽝스러워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그 배비장타령이었었는데요.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짜기 옵서예>는 바로 그 내용을 뮤지컬적인 형식과 틀에 담아 다시 표현했던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예그린악단은 새로운 우리 식의 노래극을 만들려고 했던 당시 예술가들의 노력이 담겨있었던 그런 집단이었습니다. 사실 예그린악단의 시작은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중앙 정보부장이었었던 김종필 씨가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에 대적할만한 총체극의 필요성을 느껴 재정적 후원을 함으로써 탄생됐다는 주장이 설명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 예그린악단의 공연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태인 라이브 음악 반주를 활용했고요, 당대 최고의 연예인이나 음악가, 탤런트와 배우 등이 참여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대중적인 인기가 엄청났지만 한편 큰 수익을 달성하지는 못했는데요. 오늘날과 같은 상업적 성격이 강했다기보다는 관 주도의 정치적 목적이 반영된 공연들이어서 장기 공연이 이뤄지지 않아 배보다 배꼽이 큰 문제점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수익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손실이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였던 것이죠.
하지만 예그린악단의 이와 같은 성과는 여타 아시아 국가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빠른 시기에 뮤지컬 산업을 도입하게 되는 그 토대를 마련했다는 계기가 됐다는 해석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예그린악단과 <살짜기 옵서예>의 성공은 이후 우리나라의 뮤지컬 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토양 및 토대를 마련하게 했는데요.
일련의 관 주도적인 성격의 문화예술진흥 차원에서의 뮤지컬의 도입과성장은 대형 음악극 혹은 우리 식 뮤지컬이라고 해서 가무극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가무극이라는 표현은 노래와 무용, 그리고 극,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극이라는 형식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사실 노래, 무용, 극, 이야기 이렇게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뮤지컬의 또 다른 표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예그린악단의 후신인 서울시뮤지컬단이나 88예술단의 후신인 서울시예술단 등은 꾸준히 한국적 뮤지컬 혹은 음악극, 가무극을 찾기 위한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으며, 독특한 예술적 성과와 작품들, 또 제작진과 배우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도 가져오고 있습니다.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한 뮤지컬의 발달
전문가 : 1980년대 들어서는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뮤지컬 산업의 발전도 도모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컬 민간 극단인 현대극장과 민중, 대중, 광장 등이 앞다퉈 서구 뮤지컬의 번안 무대를 우리나라 공연가에 소개하는 전통을 만들어 냈던 것이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그리고 창작극이었던 빠담 빠담 빠담, 또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작품들이 창작되거나 혹은 번안돼 무대에 올려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아무래도 저작권의 개념이 확고하지 않았던 시장의 분위기는 여러 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낳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가씨와 건달들이죠.
먼저 번안을 해 무대를 꾸몄던 한 극단이 나중에 번안했던 극단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스웠던 것은 두 회사 모두 원 저작자에게는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굳이 말하자면, 먼저 도둑질을 한 회사가 나중에 도둑질을 한 회사에 절도죄를 물은 것과 다름없는 사건이 국내 재판으로 펼쳐지게 된 셈입니다.
번안 뮤지컬 시장의 발달 : 뮤지컬과 저작권에 대한 문제 대두
전문가 : 우리나라가 국제 저작권 협약이었던 베른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이 시기가 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저작권 지불은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어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베른협약에 가입된 이후인 1990년대 후반 <캣츠>를 저작권 없이 공연에 올렸다가 공연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 송사가 치러지게 되고요, 공연 수익금을 모두 몰수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사건 덕분에 공연 저작권의 개념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죠. 요즘은 저작권을 지키지 않고 수입 뮤지컬을 올린다는 것,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시장의 변화가 이뤄졌는데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초창기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지니고 있었던, 번안 뮤지컬 시장의 다양한 실험을 그리워하는 예술가나 관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우리 식으로 재해석을 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의역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오히려 새로운 예술적 실험들을 가져왔던 것이 아닌가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저작권 시장이 더 많이 안정이 되고요, 외국 원작자들로부터 그 시장의 건전성, 건강성을 인정받게 되면 이렇게 또다시 새롭게 우리나라 식으로 번안할 수 있는 시장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 조금은 기대를 하게 되는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작권을 확보할 때도 레플리카와 논레플리카라는 방식을 통해서 저작권에 반드시 귀속되지 않고 조금은 실험을 더 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방법도 있기는 하는데요.
최근 들어서 이런 시장들도 많이 성장을 하고 있어서 말씀드린 초기의 번안 뮤지컬 시장이 다시 새로운 형식으로 우리 사회에 도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판단하고 있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뮤지컬의 도입, 유아기, 그리고 성장기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서 이야기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우리나라 뮤지컬의 시장의 창작 뮤지컬과 수입 뮤지컬에 대해 비교 분석 해보고,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변화 및 발달에 대해 여러 작품을 통해 알아본다.
02. 강사 소개
원종원 (뮤지컬평론가)
03. 강사 이력
- 순천향대학교 교수 - 방송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 진행 - 공연 <원종원의 강연 콘서트-뮤지컬 스토퍼스> 진행
- 주크박스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 뮤지컬(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2013) -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동아시아, 2006) -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세상의창,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