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재일입니다. 출판만화형식 콘티와 웹툰형식 콘티, 이 두 가지 형식의 콘티는 노출방식과 매체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칸을 기본으로 한 연출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이처럼 만화연출에 있어 칸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만화작가들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콘티작업을 할 때, 어떻게 내용을 분할하여 칸을 나누는지에 따라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적절한 칸의 구분은 이야기에 흥미를 부각시켜주죠.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칸에 관련된 만화의 중요한 성질인 ‘단속성’에 대해서 이해하고, 이 성질에 의해 칸을 나눌 때 적용되는 ‘의미단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단속성’이란 한문으로 끊을 단, 이을 속, 성품 성 자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끊어져 있지만, 이어지는 성질을 말하죠. 이 단어는 만화의 특성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만화는 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 칸들이 모여있을 때 앞뒤관계의 연결성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해 만화에서 칸과 칸 사이의 떨어져 있는 간격은 상상력을 자극해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죠.
이러한 현상은 단절되어있는 한 칸, 한 칸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는 칸과 칸 사이뿐만 아니라, 단과 단 사이, 열과 열 사이 또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도 발생하죠. 즉, 우리가 만화를 볼 때 무의식적으로 한 칸, 한 칸 시선을 옮기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술술 넘기면서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단속성이라는 성질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는 바로 그런 만화를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럼 독자들이 만화를 볼 때 책장을 술술 넘기며 푹 빠져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적용되는 원리가 바로 '의미단위’인데요. 이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콘티작업을 진행할 때 ‘시나리오 상의 이 만큼의 내용을 한 칸에 담고, 이 만큼의 내용을 다음 한 칸에 담는다. 그리고 이 만큼의 내용에서 단을 바꿔주고, 이 만큼의 내용까지 이번 페이지에 넣어 궁금증을 유발한 후 다음 페이지로 넘기게 유도하겠다.’ 와 같이 칸, 단, 열 그리고 페이지 단위로 의미를 나눠주는 원리를 ‘의미단위’라고 합니다.
그럼 의미단위에 해당하는 칸, 단, 열, 그리고 페이지가 가지는 특징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먼저 칸은 만화의 가장 작은 의미단위입니다. 그래서 한 칸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의 분량은 제한적이고, 칸과 칸 사이의 간격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생략이 아주 짧습니다. 페이지당 칸 수는 출판만화 극화를 기준으로 한 페이지당 다섯에서 여섯 칸인데요.
웹툰형식으로 콘티작업을 한다면 페이지 당 칸 수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죠. 그래서 한 회 연재분량으로 칸 수를 따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극화장르 기준으로 주 1회 연재 시 70~80칸 내외입니다. 물론 칸수는 장르와 주 연재 횟수, 스토리 전개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긴 하지만, 주 1회 이상의 연재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무척 바쁘게 작업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다음으로 단은 가로줄을 말합니다. 출판만화 기준으로 한 단에 평균 3칸 정도가 일반적이고, 연출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단과 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생략은 칸과 칸 사이 보다 긴 편입니다.
계속해서 열은 세로로 칸을 나열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인데요. 이는 웹툰의 스크롤 방식 연출에 적합한 것으로, 출판만화에서는 가로 줄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세로 열을 사용하는 빈도가 더 많아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 열과 열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생략은 단과 단 사이의 그것과 같은 정도입니다.
마지막 의미단위는 페이지인데요. 출판만화를 기준으로 페이지당 다섯에서 여섯 칸이 적당하지만, 액션 연출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큰 칸의 유무 등에 따라서 칸 수는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합니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그리고 두 페이지 다음 장의 페이지 즉, 책장을 넘기는 행위의 시간 동안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생략은 의미단위 중 가장 길게 느껴지게 됩니다. 즉, 단과 단, 열과 열 사이의 그것보다 생략의 정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따라서 출판만화라면 이러한 생략의 정도를 활용한 두 페이지 단위의 연출이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콘티작업을 진행할 때는 의미단위에 따라 칸, 단과 열, 페이지를 나눌 수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그럼 큰 의미단위인 페이지, 또는 단과 열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인 칸의 크기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결정해야 할까요? 칸의 크기를 결정할 때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는데요, 여기에서는 크게 의미비중, 거리와 정보량,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고조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고려요소인 의미비중은 만화에서 특정한 한 칸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크기가 얼만큼인가를 말하는 것인데요. 스토리전개의 측면에서 그 중요도를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칸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칸이 담고 있는 의미의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을 한 가지로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 칸이 속해있는 해당 페이지에서 얼만큼의 의미비중을 갖는지, 연재되는 한 화 분량 안에서 얼만큼의 의미비중을 갖는지, 더 크게는 작품 전체에서 얼만큼의 의미비중을 갖는지에 따라 결정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럼 여기서 제가 그렸던 만화 중 하나를 예로 들어 볼까요? '라라팔루저’라는 제목의 이 만화는, 여고생이 복싱을 시작하게 되고 실존하지 않는 라라팔루저라는 필살기를 터득해서 챔피언에게 도전한다는 내용인데요. 가장 처음 보이는 칸이 필살기 '라라팔루저'를 챔피언에게 날리는 장면입니다. 이 만화의 가장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중요한 칸인 것이죠. 즉, 작품 안에서 의미비중이 가장 큰 칸이라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컷들에 비해 더 큰 칸으로 크기를 정했고, 좀 더 많은 공을 들여서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이 만화가 연재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거죠. 결국 의미비중이란 칸들 간의 의미의 서열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칸의 크기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두 번째 기준은 거리와 정보량인데요. 카메라와 특정대상과의 거리가 멀거나 가까운가에 따라 즉, 원경인가 근경인가에 따라 칸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원경은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고 전체적인 상황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큰 칸이 적절합니다. 그에 반해 근경은 전달해야 할 정보가 많지 않고 전체적인 상황보다는 구체적인 부분 또는 행위를 잘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칸의 크기가 크지 않아도 되겠죠.
예를 들어 웹툰 '새벽 9시'를 살펴볼까요? ‘새벽 9시’의 1화 도입부는 마을의 원경을 보여주면서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전달하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큰 칸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칸부터 근경의 작은 칸들로 마을 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새벽 9시'에서 마을 창고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 놀라는 장면을 살펴볼까요?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군중 신이 가장 큰 칸으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이렇게 먼 거리는 큰 칸으로 가까운 거리는 작은 칸으로 그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고조 역시, 칸의 크기를 결정해줍니다. 칸의 크기는 앞뒤 칸과의 관계와 자연스러운 연결을 고려해 조절해주어야 하는데요. 여기에서 장면의 분위기 또는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의 감정이 앞부분보다 점점 고조되는 장면은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줌인하여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대상과의 거리가 가깝다고 칸의 크기가 작아진다면 그 감정의 크기가 잘 전달되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과의 거리가 가깝다고 하더라도 큰 칸에 그려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죠. 즉,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고조를 고려했을 때 대상과의 거리보다는 그 칸의 의미비중이 칸의 크기를 결정하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칸의 크기를 결정할 때는 의미 비중, 대상과의 거리,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고조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콘티 단계를 진행하며 이러한 요소들 중 해당 칸에서 어떤 지점이 더 중요한지를 잘 판단하여 칸의 크기를 결정해보는 연습을 많이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만화연출에 있어 칸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화작가들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콘티작업을 할 때, 어떻게 내용을 분할하여 칸을 나누는지에 따라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칸에 관련된 만화의 중요한 성질인 ‘단속성’에 대해서 이해하고, 이 성질에 의해 칸을 나눌 때 적용되는 ‘의미단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02. 강사 소개
서재일 (웹툰 작가)
03. 강사 이력
- 네이버 웹툰 “새벽9시”,“2024”연재, “천국행 택시”제5회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중장편부문 우수상 수상 - 스투닷컴“라라팔루저” 연재, 가톨릭 대학교 SOS Class 페인터 수업 출강,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출강, 청강문화산업대 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