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뮤지컬 강의를 맡은 조용신입니다. 저는 뮤지컬 작가/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CJ문화재단 대학로 아지트 극장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뮤지컬 창작의 선진국이자 현재도 수많은 작품이 매일 극장에서 열리고 있으며 관광객을 비롯한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과연 그 동안 어떻게 뮤지컬 창작이 이루어져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네. 보통 서구 뮤지컬이 150년의 역사라고 말하는데요, 그 역사를 하나하나 찾아서 분석해보고 작품도 함께 감상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그리고 공연의 특성상 제가 이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극장에 직접 가셔서 관람하시는 게 더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제가 뮤지컬 창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본과 음악이 잘 정비된 소위 ‘북 뮤지컬’이라는 개념과 간략한 역사 그리고 주요 전통적인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북 뮤지컬. 뮤지컬의 앞에 있는 단어가 북. 책이죠? 그렇다면 책 뮤지컬인가요? 네 서구에서는 대본이 갖추어진 뮤지컬을 북 뮤지컬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북은 곧 대본을 의미합니다. 공연에서 글, 텍스트가 있는 것이 바로 대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본을 북이라고 하고, 악보는 스코어라고 합니다. 악보는 다시 가사와 음표로 이루어져있죠. 가사는 리릭이라고 하고, 음표는 뮤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뮤지컬 대본은 배우들이 나누는 다이얼로그, 대화와 노래가사, 리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뮤지컬은 대화가 모두 노래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오페라처럼. 그것은 성스루 뮤지컬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대본은 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오페라처럼 리브레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뮤지컬을 기록화해서 후대 사람들이 꺼내볼 수 있도록 글이든 악보든 누구나 볼 수 있게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북 뮤지컬입니다. 여러분, 물론 당연히 뮤지컬이 대본, 악보 다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이 되지만 예전에 그렇지 않았어요. 대본 작가가 여엿한 직업으로 인정되기 전에는 무대에 서있는 배우가 특정 상황에 맞춰 애드립으로 대사를 말하는 경우도 많았고 작은 단발성 콩트처럼 공연 때마다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공연은 매회 같은 텍스트로 공연되지 않았고 주로 제작자와 배우들이 그때그때 텍스트를 만들어갔지요.
쉽게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한번 상상해 보신다면 보통 담당 PD와 개그맨이 직접 논의해서 코너를 만들고 그 중에서 아이디어를 채택된 것이 그 개그맨에 의해 올려지면 사실 중간에 작가라는 역할은 필요 없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가 대본을 써서 PD가 수락하고 개그맨이 그것을 매번 똑같이 한다면 그것은 개그콘서트가 아니라 일종의 코미디극이 되겠지요. 북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제작자가 고용한 작사가와 작곡가가 쓴 개별 곡들을 모아서 배우에게 기본 컨셉과 줄거리를 주면 배우들이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거나 만담처럼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중간 중간에 그 기성곡들을 끼워서 부르면 그것이 뮤지컬이었습니다.
장르적으로는 보드빌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20세기 초반에 크게 유행을 했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뮤지컬 시카고의 두 여죄수들의 사건 배경도 바로 이 시대의 쇼 뮤지컬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인 벨마와 록시가 나중에 석방되어 두 사람이 가진 입담과 노래 실력으로 2인조 보드빌 팀을 만들어서 엄청나게 성공한다는 이야기죠. 북 뮤지컬은 대본 작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그와 작곡가가 협업해서 만든 노래가 한 편의 완성된 대본과 악보가 되어 한 편의 꽉 짜인 작품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만약 관객들이 좋아하게 되면 장기공연을 할 수가 있는데 이 경우 배우가 바뀌어도 같은 대본으로 계속 공연할 수가 있게 되어 비즈니스적으로 매우 유리해집니다.
북 뮤지컬이 처음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인데요.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위력을 떨치고 히트작이 나오게 된 것은 1943년 ‘오클라호마!’ 라는 작품부터입니다. 오클라호마는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공연으로 소개된 적은 없지만 1999년 런던 국립극장 공연실황이 DVD로 발매되어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휴 잭맨이구요. 그의 나이 31살에 이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한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북 뮤지컬은 뮤지컬 창작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첫 번째로 뮤지컬의 각 요소들의 이상적인 결합입니다. 뮤지컬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아보면 매우 다양하죠. 바로 사건, 캐릭터, 상황, 시공간, 댄스, 대사, 플롯 이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대본이 캐릭터와 사건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이끄는 방식이 나오게 됩니다. 창작 방식도 대본과 가사를 먼저 만든 후 거기에 맞춰 음악 작업이 이어지는 순서로 창작의 주도권을 작가가 가지게 됩니다. 작곡가는 캐릭터와 상황에 맞는 정확한 음악 테마와 멜로디 부여하여 완성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소재의 확대입니다. 오페라가 아주 옛날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면 대본이 있는 현대 뮤지컬은 동시대인에게 관심 있는 바로 우리 주변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시공간이 다른 전통 소재일지라도 현재를 돌아볼 수 있게 각색함으로써 눈높이를 현재 관객들에게 맞추게 됩니다.
세 번째는 뮤지컬 플레이의 확립입니다. 뮤지컬은 크게 뮤지컬 플레이와 뮤지컬 코미디로 나뉩니다. 여기서 뮤지컬은 형용사처럼 되겠지요. 각각 음악이 있는 연극, 음악이 있는 코미디 정도로 직역을 할 수 있는데요. 사실 여기서 뮤지컬이 형용사가 아니라 독자적인 양식으로 나오게 된 것이죠. 뮤지컬 코미디는 쇼 뮤지컬이자 희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재즈 음악에 춤을 많이 추는 그런 스타일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가씨와 건달들], [42번가], [시카고] 같은 작품들이죠. 이것은 북 뮤지컬 시대 이전에도 마치 서구인들의 DNA에 깊이 각인된 그러한 스타일의 쇼 뮤지컬입니다.
반면에 뮤지컬 플레이는 대본 작가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진 시점 이후에 등장했기 때문에 오늘날 ‘북 뮤지컬 = 뮤지컬 플레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대본은 연극적인 느낌의 진지하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뮤지컬은 주로 화끈하게 놀고 노래하고 웃고 떠드는 뮤지컬 코미디가 주류를 형성해왔는데 오클라오마 이후 연도로는 194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진지함이 연극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요. 보통의 뮤지컬 코미디 작품들이 오프닝 장면을 음악을 중심으로 한 쇼임을 공표하는 스펙터클로 시작했다면 [오클라호마]는 담백하고 조용하지만 드라마틱한 오프닝을 구성했고 이 창작진 리차드 로저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다른 작품 [회전목마]를 보면 아예 조용하게 발레 판토마임을 선보이거든요. 당시 관객들은 뮤지컬 오프닝이 마치 연극처럼 조용히 시작한다는 데서 깜짝 놀랐지만 강한 드라마와 힘 있는 캐릭터 연기에 이내 빠져들어서 오늘날 비극을 다루는 뮤지컬이 많아지고 그러한 확산을 이끈 것이 바로 뮤지컬 플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뮤지컬 플레이와 코미디의 대표 작품의 한 장면을 짧게 감상해 보실까요?
먼저 오클라호마의 한 장면입니다. 오클라호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주인공을 향해 ‘내가 멋진 마치가 있다면 당신을 태우고 마을 잔치에 갈 텐데.’라고 허풍을 떨면서 진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진지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전달할 내용을 다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죠. 이와 반대로 시카고를 보실까요? 시카고의 마지막 장면 Nowadays 라는 곡인데요. 감방에서 스타가 되어 풀려난 여주인공들이 직접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바로 보드빌 스타가 된다는 그 계획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관객들이 그러한 자신의 매력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논리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있는데 두 가지가 각기 다른 소통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2가지를 요약하자면 뮤지컬 플레이는 진지한 연극에서부터 왔고, 뮤지컬 코미디는 가벼운 쇼에서 왔습니다. 뮤지컬 플레이는 음악도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세미 클래식이 중심인 반면 뮤지컬 코미디는 인간의 몸을 들뜨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재즈 음악이 중심이죠. 뮤지컬 플레이에서 악당은 주인공을 진정으로 괴롭히고 관객들의 미움을 받고 반드시 벌을 받고 사라져야 하는데 뮤지컬 코미디에서는 선한 주인공에 감화되어 개과천선하고 마지막 장면에 관객도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날 뮤지컬은 매우 다양하고 지역별, 장르별, 주제별, 양식별 다른 매력이 있지만 이 두 가지의 큰 구분은 뮤지컬 대본을 지탱하는 커다란 두 축입니다. 어떤 작품은 플레이와 코미디가 다 포함되어 있는 작품도 있거든요. 연극처럼 진지하게 슬프다가 쇼가 나와서 또 웃다가 하는 그런 작품들도 많고 어느 한쪽만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이 뮤지컬을 보게 되면 특히 대본과 음악이 결합이 잘되고 캐릭터와 스토리의 전달력이 좋은 작품이라면 뮤지컬 플레이와 코미디의 장점이 다 녹아있는 그런 작품일 것입니다. 좀 더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서사와 대본 중심의 전통적인 북 뮤지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1. 이 강좌에 대해서
서사와 대본 중심의 북 뮤지컬의 개념과 역사, 북 뮤지컬의 주요 작품을 알아보고자 한다.
02. 강사 소개
조용신 (CJ문화재단 예술감독)
03. 강사 이력
- 케이블TV 음악채널 KMTV 기획부 - ㈜설앤컴퍼니 제작감독/프로덕션 매니저 - 서울 뮤지컬 아티스트 페스티벌(SMAF) 총괄 프로그래머 - 뮤지컬 <모비딕>, <지구를 지켜라>, <도리안 그레이> 등 뮤지컬 집필 및 연출 -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 음악극창작과 출강 - 2012 예그린어워즈 혁신상 (뮤지컬 <모비딕>) 수상
저서 - 뮤지컬 이야기(도서출판 숲, 2009) - 뮤지컬 스토리(도서출판 숲, 2005)
연계과정
뮤지컬 장르의 이해 - Showtune Vs. Pop Music 뮤지컬음악과 대중음악의 발전사